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철근 가격을 놓고 제강사와 건설사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인 현대제철이 가격을 먼저 정하고 건설사에 납품하는 ‘선 가격 후 출하’ 시스템을 전격 도입했다.
이번 결정은 건설사와의 거래 관행에 있어 일대 전환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물론, 현대제철도 철근을 제조·판매하고 있는 제강사와의 가격 경쟁이 불가피해 관련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철근 공급가격을 결정한 이후 판매하는 ‘선가격 후출하’ 시스템을 도입해 12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선가격 후출하 시스템은 철근 수급 및 원자재가격 동향 분석을 통해 제강사와 건설사가 분기별 철근 가격을 사전 합의한 후 거래하는 방식으로, 제품 가격을 정하고 거래하는 일반적 상거래 기준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동안 제강사들과 건설사들간의 철근거래는 제강사들이 먼저 철근을 이후 가격을 결정하는 ‘선출하 후정산’방식으로 이뤄졌다. 1980~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건설 경기 호황기 시절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건설사들은 철강 물량 확보가 중요했고, 제강사도 만드는 즉시 팔려나갔기 때문에 나중에 정산을 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가격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설경기가 침체돼 철근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이같은 거래관행은 제강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제강사들은 철근을 계속 납품하지만 건설사들은 경영위기를 이유로 납품가격의 인하를 고집했고, 이같은 갈등이 깊어지면서 제강사들은 납품대금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울며 겨자먹기로 건설사의 요구 가격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2011~2011년 기간 때에는 제강사들은 공급 중단을, 건설사들도 연합해 일부 제강사의 철근 구매를 거부하는 등 최악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위기 때마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현재도 제강사들은 건설사들과 지난해 9월에 공급한 철근가격을 결정짓지 못해 9월 이후 5개월 동안 대금회수를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고객사들은 물품대금 지급 보류, 세금계산서 수취 거부, 발주 중단 등 비정상적 거래행태를 보이며 철근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
이로 인해 철근가격이 기형적으로 형성돼 지난 2012년 3월 t당 84만1000원(D10㎜ 고장력 철근 기준)이던 철근가격이 2013년 8월 기준으로 t당 72만원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제강사들은 지난 18개월간 성수기를 포함, 에너지가격 인상, 전기요금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있었음에도 단 한 차례도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이후 국내외 철스크랩 가격이 t당 2만4000원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철근가격 현실화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대한제강 등 주요 제강사들은 최근 2013년 저조한 경영실적을 기록했는데, 철근가격 갈등이 주요 원인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에 업계 1위인 현대제철이 시장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선가격 후출하’ 시스템을 도입했다. 건설사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지만 더 이상 물러났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건설사들이 현대제철 철근 구매를 거부하고, 공급선을 전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현대제철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그동안 단일 창구로 진행해 왔던 가격 협상도 이번 결정으로 업계간 자율로 전환될 전망다. 현대제철로서는 경쟁사들과의 가격 경쟁 부담까지 감내하며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제강사들도 이번 제도에 동참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철근 거래가 선출하 후정산이라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며, “분기별 가격결정 시스템이 정착되어 건전한 거래관행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라고 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도 “제조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일부 철강사와 유통업계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철강업계의 경영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가격 인상을 통한 생존 차원의 손익 보존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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