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은 황하문명의 발원지이자 불교 성지이기도 하다. ‘현대의 중국을 보려면 상하이를, 근대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5000년 역사를 보려면 산시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문화 발전사에서 산시성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특히 타이위안은 중원의 군사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산시성은 춘추전국 시대 중국을 주름 잡던 진(晉) 나라의 발원지다. 당시 타이위안은 진양(晉陽)이라 불리며 진 왕조에 속해 있었다. 오늘 날 산시성을 약칭할 때 ‘진’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춘추 전국시대 이후 진은 한(漢) 위(魏) 조(趙) 삼국으로 분열됐으며, 당시 조 나라는 타이위안을 수도로 삼았다. 수 나라 때 타이위안은 수도 장안(현재 시안)과 함께 양대 도시로 불렸다. 훗날 당 나라를 세운 이양(당 고조)-이세민(당 태종) 부자가 봉기한 곳도 바로 이곳 타이위안이다. 당 나라 때 타이위안은 수도 장안과 동쪽의 뤄양(洛陽)과 함께 당나라 삼도(三都)로 불렸을 정도로 번성했다.
타이위안을 비롯한 산시성 지역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명(明)·청(清) 나라 때 이르러서다. 당시 ‘산시상인’이라 불리던 ‘진상(晉商)’의 역할이 크다. 진상은 후이상(徽商 안후이성 상인)과 함께 당시 중국 경제를 좌지우지해 ‘동방의 베니스 상인’이라 불렸다. 진상은 소금, 차, 상품 및 화물 운송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중국 고대의 금융기관인 표호(票号)를 운영하며 중국 금융 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진상은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며 산시성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산시방을 향한 사정칼날에 진상들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분위기다. 올해 열린 진상 총회도 간소하게 치러졌을 정도다.
한편 중국 전체 석탄 매장량의 3분의 1이 산시성에 묻혀있을 정도로 타이위안은 중국 대표 석탄 도시이다. 풍부한 광물 자원에 힘입어 타이위안은 신 중국 초기부터 주요 공업생산 기지 역할을 하며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지역 경제는 잠시 피폐해졌지만 중국 개혁개방과 함께 타이위안은 다시금 경제 발전의 날개를 힘차게 펼쳤다.
하지만 그 동안 석탄에 의존해 경제 발전을 이어온 타이위안도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의 경제구조조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분기 타이위안시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겨우 0.1% 성장하는 데 그쳤을 정도다. 한때 중국 고속 경제성장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며 타이위안시 지역 경제를 지탱했던 중국 1위 스테인레스강 제조업체인 타이강(太鋼 타이위안 강철)은 중국 경기둔화에 따른 철강업 불황에 중국 당국의 철강업 구조조정 정책에 최근엔 순익이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다. 무차별하게 이뤄진 탄광 개발로 인한 도시 환경오염마저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타이위안은 중국 당국의 경제구조조정에 발맞춰 석탄 산업 의존도에서 벗어나 금융업, 관광업 등 ‘굴뚝 없는 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한편 과거 채석장이나 폐기물 처리장을 공원으로 탈바꿈 하는 등 대대적인 녹색 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타이위안시의 노력이야 말로 오늘날 중국 경제 구조조정의 현 주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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