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미국 주도 세계 금융 패권에 맞서기 위해 중국이 야심차게 구축한 ‘대항마’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세계 대국의 잇따른 동참불가 의사에 출범 전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두고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로비를 펼친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관측이 나왔다.
2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주도하는 500억 달러(약 53조원) 규모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중국을 제외한 단 20개 경제 약소국만이 참여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AIIB에 참여의사를 밝힌 중국을 포함한 21개 회원국은 24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되는 AIIB 창립 총회에서 은행 설립 관련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예정이다. 참여국은 인도와 몽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오만, 쿠웨이트, 카타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9개 회원국(인도네시아 제외) 등이다.
하지만, 이들 20개국은 인도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제 약체국들인 데다 참여 가능성이 높았던 한국과 호주, 인도네시아 등도 난색을 표하고 나서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매체는 여러 국가들이 AIIB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주목했다.
국제금융 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경계하고 있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대상으로 로비와 압력을 행사하면서 AIIB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다소 축소됐다는 해석이다.
FT는 한국과 호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일부 회원국들은 당초 중국 정부가 AIIB 계획을 공개했을 당시 적극적으로 참가의사를 내비쳤으나, 미국이 외교관들을 동원해 설득에 나서면서 처음 관심을 보였던 이들 국가 모두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동맹국인 한국과 호주를 끌어들여 AIIB의 위상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다음 달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호주의 AIIB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두 나라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IB 참여 문제와 관련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2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AIIB의 지배구조 문제와 세이프가드 등에 있어 국제금융기구로서의 합리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왔지만 여전히 (중국 측과) 이견이 있어 앞으로 계속 대화를 해 나아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현재 중국이 막강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AIIB의 지배구조와 환경 문제 및 적성국가 투자문제 등에 관한 환경·사회적 세이프가드 등에 대해 다소 미흡하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호키 호주 재무장관은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IB 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금주 안에 창설 준비 양해각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확인된 양해각서 서명 멤버에는 포함되지 않아 미국의 입장과 자국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실리적 관계를 두고 관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남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취임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새 정권이 AIIB 참가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AIIB는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미국과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 헤게모니에 도전하기 위해 창설됐다.
중국은 당초 자본금 규모를 500억 달러로 책정했으나 현재는 1000억 달러까지 확대됐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자본금 1650억 달러의 3분의 2에 달하는 수치다. AIIB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구상인 '새 실크로드'의 자금줄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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