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 황허(黃河)가 흐르고 남쪽으로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에 위치한 어얼둬쓰는 예로부터 유목민이 살던 곳이었다. 특히 화북지역에서 몽골고원으로 통하는 요충지로 한족과 유목민간 다툼이 잦았다. 어얼둬쓰가 본격적으로 몽골족 손에 넘어간 것은 몽골제국 창시자 칭기즈칸이 제패하면서부터다. 서역 정벌길에 잠깐 이곳에 들른 칭기즈칸은 뛰어난 경관에 감탄해 “내가 죽으면 이곳에 묻으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도 어얼둬쓰는 몽골족이 다수 거주하는 네이멍구자치구에 속해있다. 어얼둬쓰라는 명칭은 과거 몽골족에서 칸(왕)이 거주하던 둥근 천막집 ‘바오(包)’를 ‘오르도’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됐다.
쿠부치 사막 인근에 위치한 어얼둬쓰는 초원과 사막지대에 걸쳐 있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양치기 목장 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이후 경제 고도성장 속에서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삼아 빠르게 성장했다. 어얼둬쓰에 캐시미어·석탄·희토류·천연가스, 이른바 ‘양메이투치(羊煤土氣)’로 불리는 4대 자원이 넘쳐난 덕분이었다.
이어 90년대 들어서 중국 고속성장의 바람을 타고 중국 전역에 석탄·희토류 등 자원개발 붐이 일었다. 어얼둬쓰는 자원개발의 최대 수혜자였다. 어얼둬쓰 석탄 매장량은 중국 전체의 6분의 1, 천연가스 매장량은 3분의 1에 달한다. 또한 바오터우(包頭)에 이은 세계 2대 희토류 매장지역이다. 어얼둬쓰가 ‘21세기 에너지보고’라 불리는 이유다.
2002년 204억 위안에 불과했던 지역 GDP는 10년 후인 2012년 3656억8000만 위안으로 10년 사이 17배가 증가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이 2010년 발표한 '세계도시경쟁력보고서'는 어얼둬쓰를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도시 1위로 꼽았다.
2009년 어얼둬쓰 1인당 소득은 1만9672달러로 중국 대륙 도시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2010년엔 소득 2만 달러도 넘어서며 홍콩도 가뿐히 제치고 중국 최대 부자도시로 우뚝 섰다. 2011년 어어얼둬쓰엔 1억 위안(약 170억원) 이상 자산을 가진 부자가 7000명에 달했고, 어얼둬쓰 시민 15명중 한 명은 1000만 위안 자산가였다.
2010년 기준 1억원을 훌쩍 넘는 럭셔리카 레인지로버가 어얼둬쓰에만 5000대가 있었다. 당시 어얼둬쓰에서 운행 중인 택시 수(2000대)보다도 많았다. 중국에 있는 레인지로버의 90%는 어얼둬쓰 부자들이 몬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석탄 가격 급등으로 어얼둬쓰가 벌어들인 돈은 넘쳐났다. 돈은 자연스럽게 아파트 등 부동산개발 투기로 흘러들어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얼둬쓰는 풍부한 자원만 믿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석탄업계 불황에 석탄가격이 폭락하면서 어얼둬쓰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업이 문을 닫고 아파트 공사는 멈추고 집값은 폭락했다. 2020년까지 인구 70만~80만명의 신도시로 개발한다며 1조원을 쏟아 부은 캉바스(康巴什)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로 변했다.
석탄과 부동산에 의존해 온 지방정부 재정은 악화됐다. 2013년 어얼둬쓰시 정부 부채는 1000억 위안을 넘어섰다. 돈이 부족해 일부 지역 공무원들 월급조차 제때 주지 못했다. 한때 네이멍구 경제성장률 1위였던 어얼둬쓰는 2012년 꼴찌로 추락했다.
오늘날 어얼둬쓰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경제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자원개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징둥팡(京東方)이 220억 위안을 투자해 건설한 5.5세대 라인 OLED 패널 1기 공장이 지난해 7월 완공된 데 이어 2기 공장도 착공해 내년부터 가동될 전망이다.
교통인프라도 확충 중이다. 인근 후허하오터(呼和浩特)와 바오터우를 잇는 도시 고속철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2018년 완공되는 후허하오터와 허베이(河北)성 장자커우(張家口)시를 잇는 고속철은 베이징에서 어얼둬쓰까지 거리를 2~3시간 내로 좁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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