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공동주택에 공동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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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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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우리는 너무 가까이 살면서 너무 멀리 살고 있다. 우리나라 주거형태의 대세는 공동주택이다. 1962년 마포에 5층짜리 주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파트 사랑이 대단하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중은 50%에 달하며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까지 포함하는 공동주택의 비중은 60%에 이른다. 그런데 공동주택에 공동체가 없다. 여러 가구가 하나의 건물에 모여 함께 살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없다는 얘기다. 라면박스를 겹쳐 포개놓은 듯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동상이몽’의 모습이다.

이달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년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주거, 소득, 환경, 삶의 만족도, 건강 등 11개 부문을 평가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36개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특히 사회적 연계(Social Connections) 항목의 순위가 낮았다. 이 항목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척, 친구 또는 이웃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로 계산하는데, 한국인은 72%로, OECD 평균 88%보다 크게 낮다. 우리 사회가 급속한 가족 해체와 고령화로 인해 구성원 개개인이 고립돼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한때 대가족제도, 두레, 향약, 계와 같은 공동체의 미덕을 자랑한 적이 있다. 서구의 팽배한 개인주의와 부족한 공동체 의식을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야말로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공동체 의식은 부족하다고 비판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는 어떤 구조의 주택을 설계해야 하고, 어떤 도시에 살아야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주택과 도시의 디자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찰스 몽고메리가 쓴 책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행복한 도시를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 가운데 첫번째로 ‘이웃과의 적당한 거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웃과의 거리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주 스토니부룩의 대학 기숙사에서 실험을 해 본 결과 ‘복도식 아파트’보다는 ‘계단식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훨씬 더 사교적이고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었던 계단식 아파트의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주택에서 이웃들과 너무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인가?

그가 강조하는 두번째 요소는 시민의 참여와 협동을 유인하는 도시 디자인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생명력은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개방형 ‘아고라’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에서 출발한다. 하드웨어로서뿐 아니라 아테네 시민의 참여와 협동을 유인해 아고라를 작동하게 만든 도시 디자인과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셋째 저자는 자연과 녹지, 자전거와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은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줬고, 서울시민의 행복감을 높였다. 인구 800만의 복잡하고 문제 많았던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시를 행복한 도시로 바꿔놓은 ‘페날로사’ 시장은 자동차 없는 도로 ‘시클로비아’를 도입했고, 교통의 평등을 구현했다.

공동체 없는 공동주택에 몰려 사는 우리들이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공동주택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친구, 가족, 낯선 사람과 의미 있는 유대 관계를 맺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공감과 협동의 도시를 디자인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삭막한 도심에 앙증맞은 쌈지공원을 늘리기 위해 투자하고 세금을 더 낼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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