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균 경제부장]
주식하는 사람들에겐 성서처럼 여겨지는 격언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분산투자를 통해 안전하게 투자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2009년 제작된 이호재 감독의 영화 ‘작전’은 이런 격언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개인투자자인 강현수(박용하 분)는 말한다. “주식을 하면 맨날 듣는 소리가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다 웃기는 소리다. 푼돈쪼개서 언제 목돈을 버나?”
영화는 또 돈과 욕망이 얽힌 주식시장서 작전세력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개미들은 왜 항상 희생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의 불균형으로 나타났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은 최근 '99%를 위한 경제'라는 보고서에서 세계 최고 갑부 8명이 소유한 재산이 세계인구 절반의 재산 총합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재산 규모면에서 전세계 하위 50%에 해당하는 인구의 재산 총합과 같은 재산을 보유한 최상위 부자의 수는 2010년 388명이다.
이런 최상위 계층은 놀라운 속도로 부를 축적하고 있으며, 25년내 세계 최초로 '조만장자‘가 등장할 것으로 예견된다.
반대로 하위 계층의 재산 증식 속도는 매우 느렸다. 1988년부터 2011년까지 재산면에서 최하위 10%의 소득은 1인당 65달러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최상위 1%의 소득은 1인당 1만1800달러씩 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소위 부자의 기준으로 삼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2013년 기준으로 15만명이다.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한 수치다. 특히 한달 소득이 10억원 초과하는 사람은 2000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부자의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는 서민의 삶은 팍팍하다. 지난해 발표된 금융권의 수치는 지금 서민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 가를 보여준다.
최근 국내 5대 은행에 따르면 적금 중도해지 비율은 지난해말 45.3%로, 전년 말 42.4%보다 2.9%포인트 올랐다.
서민들은 경제사정이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되면 우선 보험을 해약하고, 펀드 납입중단, 적금해약 순으로 금융자산을 정리한다.
실제 경제가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보험의 경우, 몇년째 해약 증가세가 뚜렷하다.
작년 3분기까지 41개 생명·손해보험사가 고객에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22조9904억원에 이른다. 생명보험사가 지급한 해지금은 14조64199억원이고, 손해보험사가 지급한 금액은 8조3485억원이다.
보험업계의 총 해지환급금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이던 2008년 22조9000억원을 넘는 역대 최고액을 경신할 전망이다.
이런 수치도 있다. 연예인중 수입 상위 1%가 전체의 45% 이상을 독식하는 반면, 10명중 9명은 한달에 60만원도 못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배우·탤런트로 수입금액을 신고한 인원은 모두 1만5423명으로, 연평균 수입금액은 4300만원이다.
수입 상위 1%인 154명은 연 수입으로 평균 19억5500만원을 벌었다. 배우·탤런트 상위 1%가 전체 수입의 45.7%를 차지한 셈이다.
반면 하위 90%인 1만3881명의 연평균 수입은 700만원, 한달에 고작 58만원을 버는 데 그쳤다.
문제는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이 더 가난해지는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심화되고 심지어 이런 부가 세습된다는 것이다.
다시 옥스팜의 보고서를 보자. 보고서는 부유층이 조세회피, 임금삭감, 정치적 영향력 증대 등의 수단으로 자신의 부를 유지해 사회적으로 부의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지구촌 억만장자의 대다수가 자수성가형이 아니며, 선대로부터 물려받거나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부를 축적한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향후 20년간 500명이 자신의 후손에게 인도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21조 달러를 물려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 지구촌은 이런 신자본주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등은 포퓰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본주의에 내재된 모순이 폭발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문제를 저성장의 고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일면 맞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다.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인간중심의 경제 모델이 절실한 시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