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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그럼에도 우린 계속 살아간다…'뮤지컬 밑바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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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1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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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쇼온컴퍼니]


아주차이나 박은주 기자 = 삶이 디즈니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처럼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린 계속해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홀로 인생을 살아간다.  

대학로 창작 뮤지컬 돌풍의 시초 ‘뮤지컬 밑바닥에서’(연출 왕용범)가 10년 만에 대학로로 귀환했다. 작품은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극작가 막심 고리키가 1902년 발표한 희곡을 각색했다. 싸구려 선술집을 배경으로 하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왕용범 연출을 비롯 박용전 작곡가, 이성준 음악감독, 배우 최우혁 등 국내 최정상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사단이 다시 한 번 뭉쳐 기대감을 더했다.

인기를 증명하듯 공연장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수많은 관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최우혁을 비롯해 김지유, 서지영, 안시하, 이승현, 김대종, 임은영 등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극은 '고전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공식을 깨뜨렸다.

극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든 러시아의 한 선술집에서 펼쳐진다. 

젊은 사기꾼, 창녀, 미혼모, 망한 귀족, 알코올 중독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배우 등이 모여 술로 고달픈 인생살이를 달랜다. 그들은 서로 싸우고 언성을 높이며 거친 인생을 살아가지만 모두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사진제공=쇼온컴퍼니]


청년 '페페르'가 백작을 대신해 들어간 감옥에서 5년 만에 출소해 돌아온다. 페페르가 돌아온걸 축하하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선술집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핀다. 페페르는 순박하고 상냥한 여종업원 '나타샤'와 이 밑바닥을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인생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때 페페르의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백작 부인이 된 '바실리사'가 페페르에게 백작을 죽이고 함께 떠나자는 유혹의 손길을 보내지만 페페르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된다.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하려는 페페르와 나타샤 앞에 바실리사와 페페르의 관계를 의심하는 백작이 나타나 페페르에게 달려들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백작의 죽음에 연루된 페페르는 나타샤에게 제대로 고백도 못한 채 도망자 신세가 된다. 나타샤 역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선술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죽었지만 선술집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곳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술에 취해 나타샤가 예전에 티없는 목소리로 불렀던 '블라디보스톡의 봄'을 부르며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린다. 잠시 추억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알코올 중독자인 '배우'의 자살소식이 들려온다. 인생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제공=쇼온컴퍼니]


소극장 무대의 특성상 배우들의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돼 관객들도 등장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작품 속으로 빠져들었다.

페페르의 누나이자 선술집의 여주인인 '타샤'가 병을 앓고 있는 12살짜리 '막스'에게 자신이 엄마인걸 감추며 차갑게만 대하다가 막스가 죽음에 이르는 때에는 객석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사랑을 꿈꾸는 한물간 매춘부 '나스짜'가 교태를 부리며 무대를 휩쓸며 노래를 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린 '배우'가 다시 삶을 찾겠노라며 식탁 위에 올라가 절규같은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음울하게만 흘러갈 수 있는 극 중간중간에는 위트있는 대사나 상황을 웃음포인트로 활용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고전이지만 너무 어렵고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도록 적절히 수위 조절을 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관객과 호흡하며 숨가쁘게 진행된 극은 등장인물들이 처음 무대에 등장했던 곳에서 끝이 났다. 인사를 건네며 차례차례 문을 열고 나가는 인물들은 마치 인생에 마지막 안녕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씁쓸하고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마지막 문을 닫고 나가는 페페르의 표정에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자화상이 담겨있었다. 

80년 세월 동안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극장의 고정 상연 목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와 관심은 여전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리키의 드라마가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독자와 관객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뮤지컬 '마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왕용범의 섬세한 손끝에서 재탄생한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이달 9일 공연을 시작으로 오는 5월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 블루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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