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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窓] 세월호와 우공이산(愚公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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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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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림 전국부장]

아주경제 권석림 기자 = 중국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우공의 집 앞에는 둘레가 700리(240㎞), 높이가 만 길에 달하는 두 산이 있었는데, 매번 멀리 돌아 다녀야 하는 불편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우공은 가족회의를 열어 두 산을 옮기기로 했다. 얼마 후 아들, 손자와 함께 산의 흙을 퍼 담는 우공을 보고 한 친구가 비웃으며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자 우공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내 아들, 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계속할 것이오. 그동안 산은 깎여 나가겠지만 더 높아지지는 않을 테니 언젠가는 길이 날 것이오.”

이를 전해들은 옥황상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해 두 산을 멀리 옮겨줬다.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실린 이야기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우공이 산을 옮겼다’는 뜻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큰 성과를 거둔다’는 의미다.

침몰한 세월호가 지난 23일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께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전복돼 깊고 차가운 어둠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지 1073일 만이다.

세월호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으로 이 사고로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했다. 

여전히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은 3년 동안의 한숨과 기도 속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까맣게 타버렸다. 검붉게 녹슬고 금이 가고 찌그러진 세월호 선체의 모습 그 자체다.

세월호 선체가 올라온 진도 팽목항은 평온한 날씨였지만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시야가 흐릿해 팽목항에서 사고해역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인양작업이 차질 없이 이뤄지고 미수습자들을 찾아내 주길 간절히 바라는 수많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유가족들의 한없는 기다림과 아픔이 가득 서린 팽목항에는 추모 분위기가 고조됐다.

선체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여성은 팽목항에서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한 유가족 아버지는 “춥고 어두운 바다 밑에 누워 있을 자식을 생각하면 바닷물을 다 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팽목항은 사고 현장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로 세월호 침몰의 상징적 공간이 됐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의 총체적 모순이 집약된 모습도 함께 봤다.

벌써부터 "떠오른 세월호처럼 바다 밑 어둠 속에 가라앉았던 진실도 함께 떠올라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은 아직까지도 꼬리를 물고 있다.

침몰 원인을 두고서도 선박 자체의 구조적 결함 이외에 잠수함 충돌설, 제주해군기지로 운반되는 철근의 적재 여부 등이 줄곧 논란거리가 돼왔다.

인양 시기를 둘러싸고도 의혹이 난무한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의도적으로 늦춘 게 아닌가 하는 내용이다.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두고 "지금까지 은폐됐던 부정과 불의에 대한 심판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은 “인양 결정에는 다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인양 시점을 정치적 요인과 연루시키지 말라”며 항간의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자유한국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세월호 사건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한 정권이 몰락하는 시발점이 될 정도로 폭발적이었지만 이젠 가슴 아픈 사건은 뒤로하고 미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가 1073일 만에 깊은 바닷속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기 하루 전날인 22일 저녁, 강원도 원주시 일대 하늘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과 같은 모양의 구름이 포착됐다. 슬픈 소원도 이뤄지고, 국민 가슴에 남은 상처도 이젠 아물어야 한다. 애끊는 소원대로 세월호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 

세월호처럼 큰 선박을 건져 올린 건 세계에 드문 일이라 한다. 그걸 이뤄낸 힘은 부모다.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인양을 위해 끈질기게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은 자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왔다.

우공이산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설화(說話)지만 "어떤 목표를 정하고 초지일관(初志一貫)으로 임하면 하늘도 감동해 돕는다"는 강렬한 메시지다. 부모의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이제 더는 특정집단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돼서는 안 된다. 서럽고 원통하고 분해서 억장이 무너진 유가족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행위다.

“자식을 찾아와 장례라도 치러줘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도 떳떳할 것”이라는 한 어머니의 애원에는 순수(純粹)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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