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차이나 김중근 기자 = 알파고는 기계로 왔다가 신(神)이 되어 돌아갔다. 인공지능(AI) 알파고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과 커제를 이긴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연구의 강국은 어디일까?
세계적인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에 따르면 이 분야 논문을 가장 많이 낸 나라는 미국도 영국도 인도도 아닌 중국이었다. 2015년 기준 중국이 제출한 논문은 4050건(전체의 31.2%)으로 미국 2000건(15.4%) 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알파고를 만든 회사 딥마인드가 위치한 영국 773건(6.0%) 보다는 5배가 많았다. 374건(2.9%)에 그친 AI 후진국 한국과는 11배 차이가 난다. 이를 두고 관계 전문가들은 중국의 ‘AI 굴기’라고 부른다.
언제부터인가 ‘굴기’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자로는 우뚝 솟을 굴(崛), 일어날 기(起)다. ‘산이 불쑥 솟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굴기’가 지금은 마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중국과 연결된다. ‘중국=굴기’가 일차방정식처럼 인식될 정도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중국이 불쑥 솟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굴기는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름만 붙이면 ‘또 하나의 굴기’가 만들어진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과학 역량을 토대로 한 ‘과학 굴기’, 호떡집도 노점상도 쓴다는 ‘모바일 페이 굴기’, 미국을 추월하지 못해도 이미 큰 도전으로 부상한 ‘해양 굴기’, 중국이 독자 개발한 ‘항공 굴기’, 2019년이면 세계시장의 35% 공급을 전망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굴기’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위력이 느껴진다.
중국은 우리 인구의 28배나 되는 13억8000만명의 인구와 우리 영토의 96배나 되는 광활한 토지를 가진 대국이다. 그 대국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시작하기만 하면 무조건 세계 1위가 된다. 그러니까 중국의 굴기는 당연한 것이고 필연이다.
그래서일까. “항공기, 항공모함, 우주선, 우주정거장을 이미 만든 나라를 두고 ‘굴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미 구시대적인 발상이고 무지의 소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AI 굴기, ‘알파고를 넘어라’
중국 기업들은 ‘중국판 알파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텐센트에서 개발한 바둑 AI 프로그램 줴이(絶藝‧FineArt)가 대표주자다. 줴이는 지난 3월 일본 도쿄 전기통신대학(UEC)에서 열린 제10회 UEC컵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
올해 첫 출전한 줴이는 지난 대회 우승자인 일본의 ‘딥젠고(Deep Zen Go)’를 결승에서 누르고 1위를 차지하며 ‘줴이 쇼크’를 일으켰다. 현재 줴이는 구글의 알파고에 이어 세계 2위 바둑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구글’을 표방하는 바이두는 AI 로봇 샤오두(小度)를 개발했다. 바이두의 AI 시스템인 바이두브레인을 탑재한 샤오두는 200억개 매개변수를 데이터베이스화한 AI 로봇이다. 바이두는 지난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3억달러를 투자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딥러닝 연구소’를 세우는 등 오래 전부터 AI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알리바바도 1년 전에 인공지능 로봇 마커(螞可)를 개발했다.
◆과학 굴기, 과학 역량 폭발적 성장
중국은 이제 미국과 견줄 과학 역량을 갖추고 있다. 기업들이 연구개발(R&D) 인력을 대폭 늘린 덕분이다. 2013~2015년에만 40%가 늘었다.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예산도 같은 기간 50%이상 증가했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상품수가 가장 많다. 또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다. 2009년 1239개이던 세계 1등 상품수는 2014년에는 1610개로 늘었다.
웹 오브 사이언스에 등재된 국제 과학논문 수에서 중국은 2위로 비약적으로 늘었다. 전체 논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 4.5%에서 2015년(총 146만 편)에는 18.7%로 늘었다. 같은 기간 1위인 미국은 33.0%에서 26.1%로 줄었다. 수학 분야에서도 중국(18.8%)이 1위인 미국(20.0%)을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
중국은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 고속철도의 절반이 넘는 1만6000㎞ 노선을 깐 최고 기술강국이다. 우주개발 분야에서는 이미 달 탐사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 모두 과학의 힘이다.
◆모바일 페이 굴기, 중국은 모바일 페이 천국
중국 대도시에서는 지갑이 필요 없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대중교통과 식당은 물론 노점에서도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QR(Quick Response) 코드를 찍어 결제하면 된다.
중국의 모바일 페이 성장을 이끈 양대 공신은 ‘알리페이(支付宝)’와 ‘위챗페이(微信支付)’다. 알리페이는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알리바바가 2004년 내놓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고, 위챗페이는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이 2013년 출시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다.
중국 시장조사 기관 어낼리시스(analysis)에 따르면, 중국 간편 결제 거래규모가 지난 1분기에 18.8조 위안(한화 약 3103조원)을 돌파하면서 분기 최고 거래규모를 달성했다. 지난해 거래규모 6300조원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모바일 페이의 이같은 급성장은 중국 핀테크(Finance+Technology‧정보기술과 결합한 금융서비스) 산업 성장의 한 단면이다.
최근 알리페이는 QR코드 대신 얼굴로 결제하는 안면인식 결제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기 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얼굴 인식을 시킨 후 휴대전화 번호 4자리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되는 시스템이다.
◆해양 굴기, 美 추월 못해도 이미 큰 도전
중국의 G2 부상은 경제성장에 기인한다. 경제성장은 위상 제고와 군사력 증강의 재정적 기초가 된다. 동아시아 해양 분쟁에서 중국 요인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도 중국의 군사력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잠수함은 2010~2015년 기간에 그 이전 5년(2005~2010)에 비해 14척이 늘었고, 구축함은 7척, 호위함은 12척이 증가했다. 중국은 건군 이래 유례가 없는 대규모 전환을 실시하고 있다. 7개 대군구(大軍區)를 5개 전구(戰區)로 개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전투력 증강이 목표다.
중국은 이제 자체 제작한 항공모함을 가진 나라다. 지난 4월 자체 개발한 첫 번째 항공모함 산둥(山東)호 진수식을 가졌다. 우크라이나에서 도입해 개량했던 1호함 랴오닝함을 참고해서 만들었다.
◆항공 굴기, 여객기 독자 개발
중대형 여객기 제작은 대표적인 글로벌 독과점 산업이다. 현재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가 세계 시장을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그 시장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상용항공기공사(KOMAC)가 독자 개발한 ‘코맥 C919’가 지난 5월 5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보잉 737이나 에어버스 A320과 비슷한 174석의 중형기다. 내년 2월 정식 취항한다. 흔한 중국산 짝퉁으로 취급하면 오산이다.
그 중국이 지난 5월 러시아와 손잡고 대형 여객기 개발에도 시동을 걸었다. 중국상용항공기공사는 러시아연합항공사(UAC)와 함께 상하이에 합작회사 중러국제상용항공기공사(CRAIC)를 설립하고 C919 후속 모델인 C929 개발에 착수했다. 좌석 수는 280개이며, 총 120억 달러(약 13조4000억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 굴기, 세계 최대 강국 노려
중국이 2019년이면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국 자리에 오를 전망이다. 중국은 앞으로 3년간 81조원을 투자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중국에서 신규가동‧착공‧계약체결된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라인 프로젝트는 모두 12개로, 총 투자액은 3358억 위안(약 54조원)에 달했다. 매달 280억 위안(4조5000억원)씩 투입된 것이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시그메인텔컨설팅은 오는 2019년 중국이 전 세계 디스플레이 공급량의 35%를 차지하며, 한국‧대만을 제치고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퍼 호황을 맞은 한국 기업들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5조5000억원의 시설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삼성디스플레이도 10조원 규모의 시설 투자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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