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대기업과 제조업 등 성장전략의 핵심이랄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은 물론, 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산과 업무보고 등을 살펴봐도 '산업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제조업 육성 등을 기반으로 한 산업정책 없이는 성장률 3%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사람 중심의 지속성장'에 초점을 둔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적임대주택 연 17만호 공급 △월 10만원 아동수당 신설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증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또 중소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대신, 대기업 규제 차원에서 담합 근절을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 일감 몰아주기 규제·과세 강화 등 공정한 경쟁 규칙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대기업과 제조업 등에 대한 정책은 찾기 힘들다. 제조업 혁신전략 없는 성장정책이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정치권에서도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장전략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만 발표했다"며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오로지 파이를 나누는 데만 급급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산업정책 패싱 현상은 우리나라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의 예산과 업무보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업부는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전환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이슈에 묻혀 산업정책에는 신경도 못 쓰고 있다.
산업부의 내년 예산은 올해 6조9695억원보다 2.9%(1990억원) 줄어든 6조7706억원에 그쳤다. 특히 에너지 관련 예산이 올해 1조4122억원에서 2448억원(17.3%)이나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산업 분야 예산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준 셈이다.
29일 대통령 주재로 세종에서 열린 '핵심 정책토의'에서도 산업정책 분야는 등장하지 않았다.
일단 산업부가 주요 경제부처가 아닌 환경부·국토교통부와 함께 대통령 업무보고를 진행했다는 점부터 의아하다.
올해 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부처 업무보고를 받을 때는 '튼튼한 경제' 분야 아래 산업부와 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국토부가 함께 보고했다.
그 이전에도 산업부는 주로 기재부, 금융위 등 경제부처들과 함께 업무보고를 진행한 것에 비춰볼 때 이번 업무보고는 이례적이다.
산업부가 제시한 주요 안건 역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에너지와 당당한 통상정책이었다.
당연히 국내 기업 해외 이전·매각,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산업계 파장, 4차 산업혁명 관련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등 산적한 산업부문 난제에 대한 중장기 정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특히, 지난 정부 '대기업 지원 부처'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산업부가 탈원전, 통상 이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정책 마련조차 어렵다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도 국내 산업 현안에 대해 산업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 기업위원회 현안보고에 참석했다가 여야 의원들로부터 "산업부에서 산업정책이 실종됐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장병완 산자중기위원장은 "최근 기아차의 통상임금문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의 경영문제, 금호타이어와 동부제철의 해외 매각문제 등도 주력산업에 대한 산업정책은 실종되고 채권단의 단기 재무적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있다"고 잘타했다.
그는 이어 "일자리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국내 산업경쟁력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전문가는 "대기업·제조업 등을 제외하고 중소기업과 벤처만으로 3% 성장을 일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현실성 있는 산업정책을 마련, 기간 산업 육성에 힘을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중장기 산업정책을 계속 정비하고 있으며 산업정책과 관련한 부분은 범정부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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