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대칸의 나라 찾아 나선 콜럼버스
[사진 = 콜럼버스 초상화]
마르코 폴로가 남긴 가장 큰 플러스 유산은 역시 그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정리해 놓은 자료다. 하지만 그 것이 불러 일으켜 놓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낳은 결과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때문에 인류의 역사 자체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몰아간 측면이 있다. 1492년 콜럼버스(Columbus)는 대칸 쿠빌라이가 지배했던 동방의 대제국으로 가기 위해 바닷길을 통해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사진 = 이스벨라와 페르디난도]
콜럼버스는 에스파니아의 여왕 이사벨라(Isabela)와 아라곤(Aragon)의 페르디난도(Perdinando) 국왕이 대원제국의 대칸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참하고 있었다. 아라곤은 에스파니아 북동부에 있던 나라로 16세기 에스파니아에 합병된다. 이 해는 조선이 세워진지 백년이 지난 시점이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백 년 전이었다. 또 이때는 이미 대원제국이 무너진 뒤 몽골족이 다시 초원으로 쫓겨 간 한참 뒤로 중원에는 명(明)나라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 같은 사실을 콜럼버스도, 여왕이나 국왕도 알 리 없었다. 콜럼버스의 머릿속에는 그저 대칸의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지구가 둥글다는 것 확신
그는 마르코 폴로의 충실한 독자였다. 마르코 폴로가 알려준 동방의 부에 매료된 많은 유럽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는 얘기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와 같은 이탈리아인으로 베네치아와 경쟁도시인 제노바(Genova)출신이다. 그는 지구가 공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어느 쪽으로 가든 똑바로만 가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사진 = 토스카넬리]
그런 확신을 갖게 만들어준 사람은 당시 유명한 천문지리학자 토스카넬리(Toscanelli)등으로 서쪽으로 가도 동방의 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일러줬다. 이런 생각을 갖고 서쪽으로 항해에 나서기 위해 그는 포르투갈의 왕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콜럼버스는 우여곡절 끝에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아 항해 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 벤처기업가와 벤처캐피탈
서쪽 바다를 통해 아시아로 가겠다는 시도는 당시로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흔히 벤처정신을 언급할 때 콜럼버스를 벤처기업가로, 그를 지원한 이스벨라 여왕의 투자를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황금으로 뒤덮인 궁전에 왕이 살고 있는 나라 지팡구(Jipangu:일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진 = 콜럼버스 항해(영화 중)]
거기에서 대칸이 살고 있는 도시 칸발릭까지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통상 지금까지 콜럼버스는 인도를 목적지로 삼아 항해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인도가 아니라 대칸이 사는 나라를 목적지로 삼았다는 것은 그가 남긴 항해일지의 앞머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 목적지는 인도가 아닌 대칸의 나라
[사진 = 콜럼버스 동상(바로셀로나)]
"저 콜럼버스는 두 국왕 폐하께 인디아의 땅과 우리의 에스파니아어로 왕중왕"을 의미하는 그란 칸(대칸)이라 불리는 군주에 대한 보고를 올렸는데 이 왕과 그 선임자들이 우리의 성스러운 신앙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로마에 사람을 보내 그에 정통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황께서는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를 그 지역에 파견해 그 곳의 군주와 백성, 그 땅의 특징과 그 밖의 모든 것을 견문하고, 그들을 성스러운 종교로 귀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또 늘 저에게 해왔던 대로 육로를 통해 동쪽으로 가지 말고, 전에 누가 지나간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모르는 서쪽 길로 가야한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사진 = 영화 ‘1492 콜럼버스’ 포스터]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항해에 나섰다고 하는 근거는 여기에 나타나 있는 '인디아'라는 말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의 '인디아의 땅'는 오늘날의 인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포함한 모든 아시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그 한 단어 외에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콜럼버스는 대칸이 사는 대원제국을 목적지로 했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진 = 콜럼버스의 항해]
또한 콜럼버스는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확인된다. 일부에서는 콜롬버스가 당시 블랙 골드라고 불리던 후추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가던 중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일지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메모로 확인된 대칸 나라에 대한 관심
[사진 = 콜럼버스 메모]
콜럼버스가 동경했던 나라가 대칸의 나라였다는 것은 콜럼버스가 수많은 메모를 남겨 놓은 마르코 폴로의 책에서도 알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첫 인쇄본은 1485년에 간행됐다. 항해를 떠나기 전에 이 책을 구해서 읽은 콜럼버스는 그 책의 여백에 백여 개의 메모를 적어 넣었다.
그만큼 열심히 탐독했다는 증거로 관심이 가는 부분에 토를 달아 두었다. 메모로 추정해볼 수 있는 콜럼버스의 관심사는 동방과의 교역 가능성이었다. 그는 칸발릭이라는 단어의 왼쪽 빈자리에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교역량' (mercacciones innumeras)이라는 구절을 적어 놓았다.
[사진 = ‘칸발릭’ 언급 ‘세계의 묘사]
칸발릭이란 바로 쿠빌라이가 살던 대도, 오늘날의 북경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책에서 교역의 품목과 항해에 관한 내용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급비단, 향신료, 도자기를 비롯해 금과 은, 루비와 사파이어 토파즈 청금석 등 각종 보석류, 그리고 각종 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낸 것이 메모로 확인된다.
또 계절풍이 부는 시기의 항해 방향과 계절에 따른 항해 시간, 식량과 보급품을 구할 수 있는 위치 그리고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 등 항해와 관련된 내용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었다. 칸발릭 외에 항주(킨사이)와 양주(얀주) 등 부(富)가 넘친다는 도시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모든 사항을 감안해 보면 콜럼버스가 가려했던 곳은 대원제국이 들어섰던 중국 땅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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