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강창일 안산문화재단 대표 "한국형 문화기관의 기준 세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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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입력 2018-0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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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간 재단 성공적으로 이끌어…"새로운 2년, 시민과 함께할 것"

강창일 안산문화재단 대표는 "차별화한 서비스,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로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문화재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안산문화재단 제공]



지역 문화재단은 알 듯하면서도 잘 모르고,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기관 중의 하나다. 시·군·구민들과 가장 밀접하게 호흡하는 곳이지만, 그 존재나 역할, 가치 등을 몸으로 깨닫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럴 게다. 

경기도 안산시는 올해로 시 승격 32주년을 맞았다. 반월공단(현 스마트허브)과 외국인 노동자 등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했던 안산시는 '숲의 도시'를 표방하며 융복합, 다문화, 해양생태관광 등으로 차별화된 지역문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안산문화재단(대표이사 강창일)은 이런 시의 정책을 밑바탕으로 한 맞춤형 문화 프로그램으로 안산시민은 물론이고 군포·시흥·안양 등 인접 도시들에 영향을 미치며 문화계에서 입소문을 타 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역 문화재단이야 시청이나 시장이 주는 예산·사업으로 모나지 않게만 운영하면 만사형통 아닌가"라고.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국민들의 문화 눈높이는 그런 '무사안일' '탁상공론' 식의 문화기관 운영을 훌쩍 상회한다. 아니, 그런 접근으로는 문화재단의 존폐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시대다. 

지난 2년간의 성공적 재단 운영으로 최근 연임에 성공한 강창일 안산문화재단 대표(60)를 만났다. 

◆시민과 더불어 가꾸는 '문화의 숲' 
안산은 공단 위주로 만들어진 도시지만 사실은 애초부터 '자족' 성격이 강한 계획도시였다. 안산에 다양한 문화시설이 많이 조성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강 대표는 "15년 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을 개관한 게 큰 분기점이었다"고 입을 뗐다. 당시 돈으로 1000억원이 들어간 이 시설은 이후 안산에 전시, 공연, 교육, 축제 등이 자연스럽게 축적되게 하는 디딤돌이 됐다. 

강 대표는 "안산문화재단은 문화예술에 전문화된 기관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연습실, 지원시설, 편의시설 등 각종 기반이 골고루 갖춰져 있는 전진기지"라고 말한 뒤 "2년간 이런 우수한 토대 위에 바람직한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재단을 자리잡게 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지난 임기를 돌아봤다. 생활예술, 전문예술을 아우르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안산이 74만여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다. 

강 대표는 "특정 영역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문화예술 부문을 골고루 다뤄 온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안산이 새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숲의 도시'는 단순히 살기 좋은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문화의 숲'을 가꾸는 것까지 포함하는데, 재단은 20만여명에 달하는 공단 종사자를 비롯해 모든 안산 시민이 대도시에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문화생활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재단은 여느 지역 문화재단과 달리 문화예술에 집중돼 있는 사업을 시와 함께 추진해 왔고, 자연친화적 정책과 어울리는 전문 문화서비스를 펼쳐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뭇사람들은 안산 하면 여전히 공단과 외국인노동자를 떠올리는데, 여기에 2014년 4월 16일 이후론 '세월호'라는 세 글자도 각인됐다. 싫든 좋든 명확한 특징을 지닌 도시에서 문화예술 전파 업무를 한다는 것은 여느 도시와는 그 결이 다를 수 있고, 달라야만 하지 않을까. 강 대표는 "그래서 재단의 사업은 더 직접적이고 도전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이 도시에서 일어났고, 여전히 우리는 치유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사건 이후 시민들 사이엔 안전에 대한 욕구는 물론이고 좋은 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염원 등이 커졌다. 재단이 하는 일이 다른 도시의 그것보다 더 피부에 와 닿고 더 진심을 담아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안산시의회에선 '4·16 정신 및 실천조례' 수정안이 그간의 진통을 뒤로 하고 가결됐다. 이 조례안은 4·16안산시민연대 등이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주민발의 서명운동을 전개해 안산시민 8796명의 이름으로 상정됐으나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서 특정 당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되기도 했다. 올 6월 지방 선거가 치러지긴 하지만, 이 조례안은 앞으로 시의 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재단은 이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강 대표는 "문화기관으로서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그동안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4·16 관계자들과 공연·전시를 함께해왔는데, 앞으로도 치유를 위한 문화예술적 방법을 지속적으로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거리극의 메카'로 성장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재단은 안산문화예술의전당·단원미술관 방문객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86.2점을 받아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민들이 제 돈 주고 본 공연에 냉정한 비평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인상적인 결과다. 강 대표는 "개별 작품에 대한 설문조사는 실시했지만, 이용자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는 첫 시도였다"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서비스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제공자들의 논리가 아니라 이용자들의 시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강 대표가 문화예술기관 수장으로서 늘 강조하는 것은 '시민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는 "과거보단 선진국과의 문화 인프라(기반시설)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며 "작품과 시설의 질, 체계화된 인적 서비스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여기에 기관 직원들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지역 문화재단들이 운영하는 시설 대부분은 직영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 그 활용과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민간재단인 안산문화재단도 시에서 70~80% 정도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자립도는 35~40%에 불과하다. 그러나 강 대표는 "똑같은 사업이라도 안산에선 더 좋은 질로 즐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왔고, 앞으로도 더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며 "다문화에 특화된 공연, '보이지 않는 무대'인 연습실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예술인들에게 활로를 제공해주고 싶다"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강 대표는 최근에도 군포문화재단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여러 지역 문화재단, 대학 등과 교류를 활발히 해오고 있다. 이런 활동이 단순한 실적 쌓기용은 아닐 터. 강 대표는 "문화기관은 거의 모든 분야가 다 지적재산들인데 이걸 공유하지 않으면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한다"며 "이른바 '예학(藝學)협동'이라는 취지 하에 재단과 대학 간의 교류는 물론이고 여러 지역 문화재단, 예술기관 등과 손을 맞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단이 지역 내에 위치한 한양대(에리카), 서울예대와 다채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2005년 시작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4년 연속 경기도 대표축제·지역대표공연예술제에 선정되는 등 국내 대표 거리예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강 대표가 매년 '마침보람 보고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 축제에 대한 자긍심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열린 거리극축제엔 총 13개국 81개 단체가 참여했고 75만명이 관람했다. 사흘간의 축제 기간엔 지역 상권 매출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공연계 일각에선 '다른 거리축제와 이 축제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의 참여와 관람을 더 이끌어내야 한다' 등의 지적을 하기도 한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매해 발전하는 축제이기에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역 이야기에서 다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 가치를 이끌어내는 축제는 흔하지 않다. 지난해 시민 참여 규모가 역대 최다였을 정도로 이 축제는 시민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연극, 퍼포먼스, 무용, 음악, 다원예술 등 다양한 부문을 함께 완성해가며 거리극의 메카로 커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창일 안산문화재단 대표 [사진=안산문화재단 제공]


◆"예술은 이종교배···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품' 나와"
강 대표는 국립중앙극장, 문화예술TV, 고양문화재단, 오산문화재단 등에서 30여년간 일해 왔다. 중앙과 지역,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그가 진단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현실이 궁금했다. 그는 "2001년 설립된 부천문화재단을 시작으로 '독립적' 문화기관들이 숨을 쉬기 시작했는데, 우리 국민들도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며 문화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이에 따라 각 지역 문화재단들은 민간기업들의 방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자체나 시설관리공단에 기대지 않고 그때그때 저마다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며 평준화되긴 했지만, 문화기관은 아날로그식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강 대표는 "예술 서비스는 '휴먼' 서비스이기 때문에 기계적 변화가 아니라 판단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아직 지역별 문화격차가 크긴 하지만, 그럴수록 인구 50만 이상의 자족도시는 문화예술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되고 월드클래스를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을 '한국형 문화기관의 스탠더드(기준)'로 만들겠다는 꿈을 지닌 이의 청사진이다. 

"예술은 순정주의, 순혈주의로 흐르면 안 됩니다. 예술은 이종교배여야 합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품'이 나오거든요.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방식의 조화로 세상을 들썩인 고(故) 백남준 선생을 보세요. 지역 문화재단이라고 해도 이제는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서비스,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 공연장을 다시 찾게 만드는 서비스,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서비스에 미래가 있습니다."

◆ 강창일 대표이사는?
△서울 출생(1958년) △명지고 △단국대 독문과 △단국대 경영대학원 석사 수료 △국립중앙극장 공연운영과(1986~1995) △A&C코오롱/문화예술TV 편성제작국 문화사업팀 제작PD·부국장(1995~2004) △고양문화재단 문예감독·아람누리 준비단장·어울림누리 본부장(2004~2008)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사무국 부회장 겸 상임이사(2008~2012) △오산문화재단 대표(201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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