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오후 9시45분, 대전에서 퓨마 한 마리가 사살됐다. ‘퓨마를 꼭 죽였어야 했나’ 여론은 들끓었고, '동물권 보호, 동물원 폐지'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퓨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김동진 금강유역환경청장은 '퓨마 사살이 과잉대응이었냐'는 논란보다, 멸종위기종 2급 생명체가 인간의 관리 소홀로 죽게 된 사실, 즉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13일 금강청은 대전시, 대전환경운동연합 등과 '대전지역 멸종위기종 살리기 사업 협약'을 맺었다. 점차 사라져가는 지역내 멸종위기종과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환경단체가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충남 태안군 두웅습지에 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금개구리' 복원을 추진하고, 보은군 '가시연꽃' 등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진행하기로 했다.
5일 후 국제적 멸종위기종 2급인 퓨마가 인간의 부주의로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협약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 청장은 “협약식이, 우리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닙니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멸종위기종 보호에 책임을 져야 하고, 생태계와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라며 "비록 퓨마는 죽고 없지만, 그 죽음이 결코 헛된 게 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금강청의 역할 중 하나가 지역 동물원 내 멸종위기종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다. 금강 유역을 둘러싼 생태를 보존하고, 멸종위기종의 서식환경을 개선한다.
최근 세종보와 공주보. 백제보의 완전 개방을 지시한 것도 금강청이다. 녹조 제거를 포함해 수질변화와 생태계 영향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
김 청장은 지역을 넘어,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죽음으로써 동물권 보호를 알린 '퓨마 사태'
'뽀롱이'를 꼭 사살했어야 했냐는 질문에 김 청장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죽은 퓨마의 이름이 뽀롱이다.
김 청장은 “당시 날이 어두웠고, 퓨마가 야산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마취총을 쐈으나 효과가 없었고, 마취총을 더 쏘자니 주변이 어두워 정확성을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퓨마는 점프력이 뛰어나 야산을 넘어 주변 인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포획이 더 어렵고, 인명 피해도 우려돼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뽀롱이는 지난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2012년 대전 오월드로 양도됐다. 대전 오월드는 지역 시민의 퓨마 관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양도를 신청했고, 금강청이 승인했다.
동물원에는 현재 뽀롱이의 가족인 수컷 1마리와 새끼 2마리가 남아있다. 이들은 관람이 폐쇄된 기존 사육시설에서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금강청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대전 오월드 내 퓨마 사육시설 및 전시장에 1개월 폐쇄 행정처분을 했다. 동물원 감독 기관인 대전시에 개선명령과 과태료 300만원도 부과했다.
대전시는 해당 동물원인 대전 오월드 원장과 동물관리팀장에게 중징계를, 사육사 등 실무직원에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미 퓨마가 죽어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행정처분과 징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 청장은 재발방지 차원에서라도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한 원인 파악과 진상 규명을 강조했다.
김 청장은 동물원 안전수칙상 퓨마 사육장은 반드시 2인1조로 출입해야 하지만 사고 당일 보조사육사 1명만 들어간 점, 퓨마 사육시설에 2개의 CCTV가 설치돼 있지만 모두 고장난 채 방치된 점 등을 지적했다.
실제 동물원 관리 주체인 대전도시공사는 사고 당일 CCTV가 고장난 사실을 쉬쉬한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 청장은 “명백한 안전수칙 위반이었다. 맹수류 등 사육시설 잠금장치는 자동문이 설치돼야 하고, 잠그지 않았을 때 경고음 시설도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근무조 편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적 멸종위기종 2급인 퓨마의 사체를 화장한 것도 논란거리였다. 보통 멸종위기종의 사체는 교육·학술용 등으로 필요한 경우 박제를 한다.
특히 재발방지 차원에서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려면, 퓨마 표본을 제작(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 2009년 8월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탈출했던 늑대(아리)가 28시간 만에 사살됐는데, 당시 수목원은 아리가 보존가치가 있는 토종 늑대인 점을 고려, 박제해 표본관에 전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론에 밀려 박제가 아닌 화장이 결정됐다.
실제 뽀롱이가 사살된 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죽은 퓨마를 박제 하지 말라‘는 글이 쇄도했다.
이어 배우 임수정이 자신의 인스타그램(SNS)을 통해 “박제라고요? 정말 너무합니다.. 제발, 이제 그만 자연으로 보내주세요. 부탁합니다”라고 밝히면서 박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김 청장은 “‘퓨마가 살아서도 갇혀 있었는데, 죽어서도 평생 갇혀야 하느냐’는 식의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소각(화장)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퓨마 사체는 주변에서 보기 힘든 귀한 것이라, 박제도 검토할 가치가 있었지만 부정적 여론을 뒤집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전 동물원이 퓨마의 유골을 묻은 곳에 추모비를 세웠다. 퓨마의 영혼을 달래고 시민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가 기억하고,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금강청은 이번 사태 이후인 지난 9월 21일부터 10월 4일까지 맹수류 등을 사육 및 전시 중인 동물원에 대해 지자체 합동으로 국제적 멸종위기종 사육시설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앞으로도 매년 1회 이상 정기 점검하던 것을 사육 중인 동물의 위험성 등을 감안, 상반기와 하반기 2회 이상으로 점검을 강화할 예정이다.
최근 동물원 폐지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 청장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동물원을 바로 폐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동물의 생태환경에 부합하는 동물원 조성이 필요하다. 결국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동물원은 관리 주체가 지자체나 에버랜드 같은 민간이어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는 등 동물원 생육 환경 개선에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강 세종보·공주보·백제보 완전 개방
이달 금강청은 금강 상류에 있는 세종보와 중류 공주보. 하류 백제보 등 3개 보를 모두 개방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논 침수냐''용수난 부족이냐' 등 보개방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보를 개방할 경우 강 수위가 높아져, 주변 논들이 침수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과 농업용수 부족으로 보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럼에도 금강 유역 보의 완전 개방이 가능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김 청장은 “지난해 10월 지역 주민과 지자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 보 개방 필요성에 대해 8회에 걸쳐 의견을 수렴하는 등 소통해 왔다”며 “금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보 개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지난 9월 11일 백제보 농민대책위, 부여군 등 6개 기관이 참여하는 ‘백제보 개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 10월 17일 전면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제보 지역에서는 지하수를 이용하는 수막재배가 진행돼 농민이 보 개방으로 지하수 수위가 낮아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수막재배란 비닐하우스 안에 또다른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그 위에 지하수를 끌어올려 수온 12~15℃의 물을 뿌리는 농법이다. 겨울에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고, 실내온도를 유지해 보온 역할을 한다.
백제보 인근에는 4대강 사업으로 강변농지가 사라지면서, 비닐하우스 시설재배 농가들이 늘어났다. 농가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하수를 이용해 수박·멜론·딸기·호박·오이 등의 작물을 수막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김 청장은 “지하수가 안 나올 우려가 있는 곳에 호수를 대서 쓸 수 있도록, 지하수 중형관정 16곳을 개발하기로 농민들과 합의했다”며 “다만 이들 보는 임시 개방이고, 특히 백제보는 비닐하우스 농가의 수막재배가 다음 달부터 본격화돼 11월 1일부터 수위를 개방 전인 4.2m까지 회복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제보는 지난 2012년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후, 수문개방을 놓고 수차례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09년 10월 GS건설이 착공한 백제보는 바닥 침식, 매년 녹조 발생으로 60만 마리 넘는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보 철거 여부를 묻자 김 청장은 “현재 환경부내 4대강 조사평가단이 금강수계 보 평가체계 연구용역을 준 상태”라며 “이 결과를 토대로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고, 내년 6월 출범하는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WHO? 김동진 금강유역환경청장
김 청장(50)은 대구 출신으로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27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관직에 입문했다.
환경부 △환경정책실 유해물질과장 △자연보전국 국토환경정책과장 △자연정책과장 △운영지원과장 △자원순환국장을 거쳐 올해 1월 금강유역환경청장으로 부임한 환경통이다.
김 청장은 금강유역 생태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충북도 내 △영동군의 광릉요강꽃, 붉은점 모시나비 △진천군의 붉은박쥐 △보은군의 가시연꽃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또 지역 마라톤 대회 참석, 연탄나누기 등 지역 사회 공헌에도 열심이다.
지역 소상공인의 의견을 환경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고, 지역 언론사 독자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민의 의견을 듣고 있다.
지난 2000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데 이어 2011년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금강유역환경청은 현재 대전 둔산동에 있는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금강청 본사 건물은 지난 1990년에 준공된 이후 내진설계 미흡과 노후화로 벽체 균열이 심화돼 안전진단에서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한 D등급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재건축하기로 결정했고, 기존 건물을 철거한 후 신(新)청사를 건축하기로 했다. 현재 건물의 골조공사가 진행 중이고, 내년 10월 말 신 청사가 준공될 예정이다.
공사 기간 중에도 지속적인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본청인 국립중앙과학관 인근 구 청사에서 현재의 임시청사로 이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