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에 있는 ‘물레책방’은 대구 동네 서점의 터줏대감이다. 2010년 4월 23일 세계책의날에 문을 연 물레책방은 책을 통해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헌책방이지만 수험서나 일반 잡지는 찾아볼 수 없다. 책방지기의 주요 관심사인 인문학, 사회과학 책이 가득하다.
책방지기가 직접 발품을 팔아 모은 책도 상당수다. 책방에 들어서면 책방지기가 추천한 책이 보기 좋게 펼쳐졌다.
책방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녹색평론》 수십 권이 눈에 띈다. 《녹색평론》은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창간된 잡지로, 물레책방과 인연이 깊다. 물레책방 자리에 있던 《녹색평론》 사무실이 2010년 서울로 옮기면서 장우석 대표가 이곳에 헌책방을 꾸몄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눈길을 끈다. 한 권이 아니다. 제목이 같지만 표지가 다른 책이 판본별로 꽂혔다. 권정생 작가의 대표작 《몽실 언니》도 여러 판본이 있다. 아끼는 책을 한 권 한 권 모은 책방지기의 정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구 지역 출판물에 관심이 있다면, 물레서점은 필수 코스다. 대구 출신 문인이 쓴 책과 대구 지역 출판사에서 낸 책을 모아놓은 서가가 따로 있다. 장 대표는 “기형도 시인은 대구를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며 “이 서가를 보는 분들이 대구에 작가가 이렇게 많으냐며 놀란다. 내가 사는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도 공간의 힘”이라고 말한다.
물레책방이 소장한 책은 약 3만 권. 무거운 책을 지탱할 수 있도록 책장을 만들 때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옥을 짓는 방식으로 기둥을 세우고, 못을 사용하는 대신 나무와 나무를 끼워 맞췄다. 책장과 벽 사이에는 공간을 넉넉히 두어, 책에 습기가 차는 문제를 방지했다. 자그마한 바퀴가 달린 책장도 있다. 문화 행사를 진행할 때 공간을 재배치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물레책방은 겉은 서점이지만, 속은 복합 문화 공간이다. 저자와 진행하는 북 콘서트는 물론, 지역 청소년이 토론회를 펼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장우석 대표가 직접 고른 다큐멘터리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다이빙벨〉, 커피 트럭으로 여행하는 이담 작가의 여정을 담은 〈바람커피로드〉 등 대형 극장에서 보기 힘든 영화를 소개해왔다.
지난 9월에는 대구미술관 간송특별전 〈조선회화명품전〉에 맞춰 《간송 전형필》의 저자 이충렬 작가와 함께 간송의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장 대표는 “처음부터 지역의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요즘은 저자나 예술인이 먼저 연락을 주기도 한다. 앞으로도 책을 중심으로 특별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레책방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유료 행사도 있지만, 대다수 행사는 헌책 한 권이면 된다. 행사 때 모은 책은 필요한 기관에 기증해서 책이 다시 순환하게 한다.
헌책방에서 나만의 취향을 차분하게 찾고 싶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일요일 휴무) 사이에 들르자. 문화 행사에 참여하고 싶다면 물레책방 SNS에서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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