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은 대후기업 상무가 붉은대게의 매력에 빠진 것은 조부의 영향이 크다. 붉은대게로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권 상무는 가공방식을 다변화해 국내 최초로 소비자 대상 붉은대게 제품을 개발, 신시장을 창출했다.
2009년 미국에 거주하던 그는 잠시 고향을 방문해 붉은대게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권 상무는 “저희 할아버님이 국내 최초 붉은대게 통발 어선을 운영하셨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통발잡이’ 기술을 배우고 장비와 어선을 사 오셨다. 이를 아버지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붉은대게는 친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수출에만 의존하던 후포 지역 붉은대게 가공산업은 수입상들의 가격 장난에 제값도 못 받고 어획량도 감소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해 권 상무는 경북 울진 후포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붉은대게 가공업체인 ‘대후기업’에서 직원 투자형식의 공동 운영을 맡았다. 당시 대후기업은 매출의 95%를 일본에 수출하는 게살 단순 가공제품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는 대일(對日)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시장 확보를 위해 최종 소비재 제품 개발에 전념했다.
이듬해 그는 게살 쌀국수를 개발해 대형마트에 납품했지만 소규모 업체로서 브랜드와 유통의 한계를 느꼈다. 권 상무가 눈을 돌려 2014년 대기업인 동원F&B’와 함께 내놓은 게맛살 제품이 처음 히트를 쳤다. 명태 어육과 밀가루만 이용한 기존 제품과 달리, 실제 붉은대게살을 함유한 것이 주효했다. 이 제품은 게맛살 시장에서 단숨에 점유율 2위에 올랐다. 2015년에는 도미노피자에 100t의 붉은대게살을 납품했다. 기존 국내에 없던 새로운 붉은대게 수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였다.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납품량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그는 거의 버려지던 재료인 게딱지와 게장, 게를 삶은 물인 ‘자숙액’을 활용하는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2017년 출시한 ‘대게딱지장’은 작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파를 타면서 대히트를 쳤다. 권 상무는 “작년에는 협력업체에서 하루 6~7차례 물류를 보내도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다. 매출도 단숨에 90억원까지 오르고 국내 매출 비중도 35%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제품은 성공했지만 안심할 틈이 없다. “지금도 납품 요청은 계속되지만 가공할 원재료가 없다"며 “어종 보호를 위해서라도 대게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권 상무는 대게 자숙액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대게향 간장이나 분말 형태의 조미료 등 다양한 제품을 실험 중이라고 전했다. 올해 그는 게살과 자숙액을 함께 갈아 만든 구이 과자를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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