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증시는 평탄치 않았다.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등 대외 악재로 2016년 이후 3년 만에 코스피가 장중 1800대로 주저앉기도 했다. 증시가 얼어붙자 공모펀드 시장도 침체됐다.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신규 설정된 공모펀드 규모는 6조9537억원으로 전년(12조6124억원) 대비 절반가량 줄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좋은 성과를 낸 펀드도 있었다. IBK자산운용이 지난해 1월 출시한 'IBK플레인바닐라EMP펀드'가 대표적이다.
9일 만난 신동걸 IBK자산운용 전무는 오랜 준비를 거쳐 설계한 상품 구조와 긴밀한 협업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2012년 주식운용본부 본부장으로 IBK자산운용에 영입된 신 전무는 현재 운용총괄(CIO)을 맡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도 IBK플레인바닐라EMP펀드 인기몰이
신 전무는 "금융투자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며 “업계 간 경쟁을 극복하고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선 차별화된 전략과 상품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 투자자도 손쉽게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시대이고, 대체투자 문턱도 많이 낮아졌다"며 "공모펀드 상품을 운용할 때도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IBK플레인바닐라EMP펀드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했다.
신 전무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우리의 경쟁자는 다른 자산운용사의 액티브 주식 운용부서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어떤 국가와 회사의 상품이 경쟁자인지 알 수 없어 틀에 박힌 펀드로는 안정적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EMP펀드는 전체 자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재간접 상품이다. 이미 ETF도 다양한 기초자산을 담고 있다. 이런 ETF를 다시 모아 포트폴리오를 짜기 때문에 분산투자 효과는 더욱 커진다.
지난해 시장이 어려워지자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커졌고, EMP펀드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주목받았다. 신 전무는 "ETF 시장에선 자금력을 갖췄어도 후발주자는 입지를 구축하기 쉽지 않아 EMP펀드를 대안으로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품 출시 시기는 지난해 1월이었지만 그 전부터 담당 매니저와 함께 오랜 기간 리서치를 하고, 상품 구조를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IBK플레인바닐라EMP펀드의 강점은 일반 혼합형 펀드와 차별화된 상품 구조다.
신 전무는 "보통 위험 회피를 위해선 주식 비중을 낮추고 채권 비중을 높이는데, 이 상품은 고정 수익을 보장하는 리츠나 고배당 자산과 함께 성장형 주식을 편입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흥행 요인은 차별화된 상품구조와 외부 자문사 협업
그리고 오랜 준비와 차별화된 상품 구조는 흥행으로 이어졌다. 출시 8개월 만에 설정액 1000억원을 돌파했고, 하반기에도 실적을 쌓은 끝에 지난해 14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지난 8일 기준 펀드 순자산가치(NAV)는 1832억원이며 수익률은 22.7%다.
일반적인 자산배분형 펀드나 인컴형 펀드보다 좋은 성과다. 신 전무는 “인컴 투자를 통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고, 향후 성장이 예상되는 자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부족한 수익률을 개선했다"며 "시장 움직임에 적극 대응해 변동성을 관리한 게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외부와의 협업 구조도 차별점이었다. 상품개발 전문가들이 차린 투자자문사 플레인바닐라와 상품 설계부터 운용 과정까지 상세히 논의했다. 신 전무는 "상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플레인바닐라와 우리 회사의 운용 역량이 만나 시너지를 냈다"고 밝혔다.
그는 "자문사와의 협업은 기존의 시각과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특히 자문사가 가진 개인 투자자들과의 밀착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회사의 협업 사례는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올해 초 두물머리투자자문의 로보어드바이저 ‘불리오' 서비스를 활용한 EMP펀드를 출시했다. 비슷한 시기 유경PSG자산운용도 플레인바닐라와 함께 자산배분형 펀드를 내놨다.
IBK운용은 올해 판매 채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IBK플레인바닐라EMP펀드의 덩치를 키울 방침이다. 신 전무는 “고객들이 투자 시점에 대한 고민 없이 안심하고 장기투자할 수 있도록 밸런스를 유지할 것"이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변동성 관리"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관 투자자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 전무는 “아직 기관은 EMP펀드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고, 특히 해외에 투자하는 EMP펀드 상품은 흔치 않다”며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관 투자자들도 EMP시장에 관심을 많이 갖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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