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가을 시작을 알리는 '백로'였던 이달 7일 양양·고성·속초 등 강원 영동 북부에 '호우주의보'가 발표됐다. 가을장마로 많은 비가 쏟아져서다.
지난달 중순부터 가을장마가 이어지면서 한가위 대목을 앞둔 농가들이 근심에 빠졌다. 때늦은 장맛비 여파로 일조량이 떨어지면서 채소가 제대로 자라지 않고, 과일은 당도가 크게 떨어져서다. 여기에 병충해가 겹치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0일 행정안전부·농림축산식품부·기상청 등에 따르면 이달 3일 기준으로 최근 6개월간 누적 강수량은 935.0㎜를 기록했다. 평년 989.9㎜의 94.5% 수준이다. 최근 잦은 비가 내린 탓이다.
특히 전남 지역엔 평년보다 108.6% 많은 1114.5㎜가 쏟아졌다. 경남과 경북, 제주 역시 평년 기록을 넘었다. 경남은 1215.2㎜를 보이며 평년 대비 106.6%, 경북은 869.3㎜로 104.0%, 제주는 1120.9㎜로 100.5%를 각각 기록했다.
전북 누적 강수량은 971.2㎜로 99.5%, 강원 영동 지역은 877.3㎜로 95.2%였다. 강원 전체(778.3㎜)로는 78.0% 수준이다. 서울·경기(736.4㎜)는 72.0%, 충북(858.5㎜) 90.5%, 충남(793.6㎜)은 83.8%였다.
가을장마 영향 등으로 9월 강수량은 평년(84.2~202.3㎜)보다 많거나 비슷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이달 들어 전국적으로 이미 한 차례 호우특보가 내려졌다. 당시 호우로 도로 일시침수 12건, 도로 침하 4건, 도로 유실 2건, 장항선 선로 토사유입 사고 1건 등이 발생했다.
농가 역시 때늦은 장맛비로 큰 피해를 봤다.
최근 많은 비가 쏟아진 강원 지역 농가는 병해충 창궐로 어려움에 빠졌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태백 산간 밭에는 잦은 비 때문에 채소가 흐물흐물해지면서 썩는 '무름병'과 뿌리가 혹 모양으로 부푸는 '뿌리혹병'이 급속히 퍼졌다.
태백시가 추산한 병해충 발생 고랭지 배추밭은 전체 면적의 20%인 91㏊에 달한다. 아예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도 생겼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가 최근 내놓은 '주요 농산물 주간 거래동향(9월 6~12일)'에 따르면 전국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은 4849ha로 전년보다 4.1%, 평년과 비교해서는 5.7% 각각 줄었다. 이 여파로 생산량도 평년보다 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aT 관계자는 "8월 상순에 출하한 고랭지 배추 작황은 양호했으나, 8월 중순부터 9월 출하분은 지속된 비로 부진하다"고 설명했다.
과수 농가 역시 피해가 적지 않다. 전국 농가는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 초까지 이어진 잦은 비로 인한 낙과(落果)로 애를 먹고 있다. 낙과 제품은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전북 전주에선 한가위 추석 대표 과일인 배가 '흑성병'에 노출돼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실 표면에 검은색 얼룩점이 생기는 흑성병(검은별무늬병)은 저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생긴다. 올해 4∼5월에 많은 비가 내리고, 가을장마가 겹치면서 크게 퍼졌다.
전주에서 키우는 배 가운데 온전한 크기와 모양, 상품성을 갖춘 '정형과' 비율은 30%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당도 역시 10∼11브릭스(Brix)로 예년보다 10%가량 낮을 것으로 추산된다.
사과·복숭아·자두 등을 재배하는 경북 지역 과수 농가는 미국선녀벌레 확산으로 골머리다. 지난 6일부터는 긴급 공동방제도 하고 있다. 미국선녀벌레는 수액을 빨아 과수 생장을 방해한다. 하얀 왁스 물질을 배출, 그을음병을 유발해 과일 상품성도 떨어트린다. 경북 청도에선 복숭아 농가를 중심으로 탄저병이 발생했다.
한가위를 앞둔 소비자들 역시 가을장마가 마냥 반갑지는 않다. 채소와 과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가격이 크게 뛰어서다. '장보기가 겁이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9일 기준 깻잎 100g의 소매가격은 평균 3074원으로 한 달 전(1901원)보다 61.7%나 뛰었다. 100g은 깻잎 10장짜리 다섯 묶음 무게다. 같은 날 국내 냉장 삼겹살 100g 가격인 2370원보다 비싸다.
애호박 1개 소매가격은 같은 기간 1109원에서 2814원으로 150% 넘게 올랐다. 고랭지 배추 1포기 가격은 4337원에서 5088원으로 20% 가까이 뛰었다. 10개들이 사과(홍로)는 2만4456원에서 2만5408원, 10개짜리 배(원황)는 3만1863원에서 3만3242원으로 각각 상승했다.
20㎏짜리 쌀 한 포대 가격은 9일 기준 5만9600원으로 1년 전(5만2644원)보다 13% 넘게 올랐다.
통상 추석을 앞두고 성수품 가격이 크게 뛴다. 올해는 가을장마로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이 때문에 명절 상차림 비용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격조사기관인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가 추산한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27만원 이상이다. 물가정보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전통시장에서 한가위 차례상을 준비하면 27만4500원이 들어간다. 지난해보다 1.5% 많은 금액이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면 전년보다 2.4% 많은 38만3820원을 써야 한다. 지난해 상차림 비용이 전년보다 16%가량 오른 것을 고려하면 물가가 여전히 높은 것이다.
물가정보 관계자는 "봄철 이상저온 현상과 여름철 역대급 폭염, 가을장마 등 올해 연이은 기상 악재로 차례상 품목 가격이 높아졌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수입 감소와 작업량 부족 역시 높은 물가 형성에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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