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L이앤씨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아크로'를 적용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아주경제 DB]
프리미엄 브랜드 도입을 요청하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늘어나고, 하이엔드 브랜드가 대중적 인기를 얻을수록 역설적으로 그 브랜드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건설사 고급브랜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물산과 GS건설은 내년에도 신규 브랜드 론칭 없이 기존 브랜드에 집중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은 래미안의 상위 브랜드를 론칭하는 대신 리뉴얼하는 방식을 택했다. GS건설도 기존 브랜드 '자이'에 집중하는 대신 고급 커뮤니티 서비스인 '자이안 비'를 통해 아파트 품질 관리에 차별화를 두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아파트 품질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리미엄 브랜드 도입에 대해 내부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다"면서 "오랜 논의 끝에 결국 래미안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GS건설 관계자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나뉘면 기존에 지켜온 자이의 브랜드 가치가 희석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하는 전략이 적합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승자의 저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초기에는 서울 강남권, 분양가 3.3㎡(평)당 5000만원, 단지규모, 지역 랜드마크 등 일정 조건을 갖추는 단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상위 1% 아파트' '강남 아파트'에 대한 희소성과 소비자들의 열망이 더해지면서 서울 강북지역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를 요구하는 조합이 늘고 있다. 건설사들도 수주 경쟁을 위해 프리미엄 브랜드 유치에 적극적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도입을 놓고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조합도 있다. 현재 서울 노량진7구역은 하이엔드 브랜드 도입을 위해 기존 시공사(SK에코플랜트)를 교체하는 총회를 추진 중이다. 신당 8구역은 시공사(DL이앤씨)가 조합원들의 거듭된 요구에 결국 '아크로'를 적용하기로 했다. 부산 금정구 서금사5구역과 서금사6구역, 괴정5구역, 우동3구역 재개발조합도 같은 이유로 시공사와 결별했다. 광주 지역 내 최대 재개발 사업인 광천동 재개발사업 조합도 시공사와 하이엔드 브랜드 시공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영업력 강화를 위해서는 하이엔드 브랜드 론칭만 한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기존 브랜드 가치 하락, 최근 적용 범위를 놓고 전개되는 갈등 양상을 보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신규 브랜드는 당장은 신선할 수 있지만 기존 브랜드 충성고객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효과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위 1%를 위한 마케팅의 딜레마는 샤넬, 까르띠에, 루이비통 등 명품업계에서도 빈번하게 드러난다. 명품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질수록 명품으로서의 존재 의미는 사라지는 현상이다.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오랜 시간 고객에게 선택되는 최고급 브랜드는 기업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이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일관성 있게 끌고 간 경우"라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일관성을 잃으면 고객도 혼란에 빠지고, 다시 재구축에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급 브랜드는 기업의 노력과 고객의 반응, 구전 커뮤니케이션이 수십, 수백 년 반복적으로 형성된 결과"라면서 "프리미엄 이미지 희석 없이 매출 증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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