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 입국한 3월 11일 밤 11시경, 격리호텔 방 전화벨이 울렸다. 잠결에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말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이날 오후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해 받은 코로나 핵산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니.
목구멍이 조금 따끔거렸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탓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기 전 체온이 37℃를 살짝 넘기는 미열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느라 피곤해서라 생각했지, 코로나19 초기 징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중국서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들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정체 모를 항생제 주사를 맞는다, 폐CT(컴퓨터단층촬영)만 5번을 찍었다, 바이러스 박멸까지 한 달 넘게 입원했다, 외국인은 병원비만 수만 위안이 깨진다는 등등. 덜컥 겁이 났다. 그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달 만에 지은 컨테이너 간이병동 입원해보니
다음 날 오전, 의료팀 지시에 따라 N95마스크와 실리콘 장갑을 착용하고 신발에 비닐을 씌운 채 구급차에 올라탔다. 기자를 포함해 함께 비행기를 탔던 한국인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됐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베이징 차오양구에 위치한 디탄병원. 중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감염병 전문 병원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중국서 코로나19가 발병했던 2020년 봄, 디탄병원에서 베이징시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한 달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격리병동을 지어 200개 넘는 병상을 마련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격리병동은 컨테이너를 여러 개 이어 만든 1~2층짜리 가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잿빛 가건물이 마치 난민수용소 같은 서늘한 느낌이 든다. 총 6개 구역으로 이뤄진 격리병동에서 기자는 4구역에 배치됐다. 4구역은 가로 7m, 세로 3m 크기의 6평 남짓의 병실(2인 1실) 13개로 이뤄졌다. 야외로 뚫린 창문 하나 없는 폐쇄된 공간의 병실에는 샤워설비를 구비한 화장실, 냉난방, 환풍 시설이 갖춰져 있다.
격리병동에 근무하는 의료진과 직원들은 모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덮는 흰색 방호복과 안면보호대 혹은 고글을 착용하고 있다. 3월 초 디탄병원 격리병동에서 근무하던 의사 1명이 확진된 탓인지 방역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채혈, 소·대변, 폐CT 검사까지…중의약 처방도
격리병동 입원 당일 의료진은 간단한 개인 병력을 조사한 후 곧바로 각종 검사를 실시했다. 체온, 혈압, 맥박은 물론 채혈, 소변, 대변 검사도 했다. 폐CT 검사는 병동 밖 이동식 CT버스에서 이뤄졌는데, 12일간 입원 생활 중 병실 밖을 나간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기자가 이동하는 내내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뒤에 1m 간격을 붙어 따라오며 쉴새없이 소독약을 분사했다. 격리병동 입원 환자에겐 일제히 전자 체온계도 주어진다. 처음 입원한 환자는 약 사흘간 3~4시간에 1번씩 체온과 심박수 산소포화도를,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면 하루에 1번만 측정해 보고하면 된다.
경증환자로 분류된 기자는 중의약을 처방 받았다. ‘은단해독과립(중국명銀丹解毒顆粒)’이라는 갈색 가루약인데, 아침, 점심, 저녁 1포씩 뜨거운 물에 타서 먹었다. 디탄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직접 개발해 상용화한 약으로, 금은화 모란뿌리 껍질 밀마황 승마 등 11개 중약재로 제조했다. 해독, 양혈, 선폐투사(宣肺透邪 폐에 침범한 사기 배출) 등의 효능이 있어 코로나19 환자의 조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게 임상실험 결과 확인돼 스위스 저명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파마콜로지(Frontiers in Pharmacology)’에도 소개됐다고 한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중의학의 치료 효능을 집중적으로 선전해왔다.
가래·기침을 멎는 데 도움이 되는 중국 제약사 바이윈산의 '밀련천패비파고(蜜煉川貝枇杷膏)'와 칼륨보충제도 함께 처방됐다.
중앙정부 퇴원기준 완화에도…지방정부 '소극적'
다음날 아침 새벽 6시경 병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PCR 검사를 실시한다며 기자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면봉을 코에 쑤셔 넣고 검체를 채취했다. 10초간 면봉을 살살 돌리고 나서야 비로소 검사는 끝이 났다. 이날 검사 결과 CT값은 고작 21에 불과했다. 중국은 PCR 검사에서 CT값이 40 이상이 나와야 음성으로 판단한다. 담당의사는 무증상자의 경우 1주일이면 음성이 나오지만, 기자는 경증환자라 최소 2주는 입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자가격리 일주일이면 되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입원한 지 닷새째 되는 16일 중국 보건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 퇴원 지침을 다소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방역정책을 새로 발표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눈이 번쩍 뜨였다. 중국 코로나19 방역정책이 변경된 건 2021년 4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코로나19 확진 환자 퇴원기준을 완화한 것이 핵심이다. PCR검사 CT값이 음성 기준치인 40이 아닌 35 이상만 돼도 전염 우려가 없다는 판단 아래 퇴원할 수 있고, 퇴원 후 지정 격리호텔로 이동해 2주간 추가 격리할 필요없이 자택에서 1주간 자가 건강 모니터링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내 오미크론 감염 환자가 폭증해 의료자원 물자가 부족해지자 경증환자나 무증상자에 대한 방역을 완화한 것이다. 실제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한 지린성, 상하이 등지는 해당 정책 시행에 즉각 돌입했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안정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수도 베이징은 새 정책 시행에 소극적이었다. 새 정책이 언제부터 시행되냐는 기자의 수차례 질문에도 담당의사는 “우리도 고대하고 있지만, 아직 베이징시 정부로부터 시행 통지를 받지 못했다”며 “현재 준비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곧 여기서 ‘탈출’해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란 기자의 희망도 산산조각이 났다.
알리페이 없으니···불편한 병원생활
베이징의 권위있는 병원이라 그런지 입원 생활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의료진은 매일 건강체크를 하며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했고, 문제가 생겨 호출벨을 누르면 즉각 해결됐다. 직원들은 매일 아침 병실 바닥 청소와 쓰레기 수거, 살균 물티슈를 이용한 먼지 제거 작업을 진행했고, 오전, 오후 약 1시간씩 병실 내 환기도 자동으로 이뤄졌다.생수, 화장지조차 제공되지 않지만 휴대폰으로 택배 배송이 가능해 필요한 물품을 주문할 수 있다. 병원에서 개설한 위챗 미니앱의 ‘젠리위안(健力源)’이라는 계정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직접 주문해 위챗페이 결제 후 배송받기도 한다.
다만 중국에 갓 입국해 현지 휴대폰 번호와 은행 계좌가 없어 미처 모바일 결제 앱을 깔지 못한 외국인으로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자도 현지 지인에게 부탁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느리긴 하지만 와이파이가 잡혀 인터넷은 가능하다. 하루 60위안 하는 저염식, 저지방 도시락도 제공된다. 아침엔 삶은 계란·팩우유·꽃빵, 점심과 저녁은 대체로 쌀밥과 죽 혹은 국, 그리고 두세 가지 반찬이 나온다. 수시로 과일(배, 사과, 바나나)이나 요거트도 제공됐다. 차츰 기력이 회복돼 입맛이 돌아오면서 병원식이 물릴 때쯤 한국서 가져온 간편식으로 식욕을 돋우기도 했다.
퇴원 전 병원은 기자가 필요로 하는 진단증명서(영문), 퇴원기록지, 영수증 명세서 등을 발급해 줬다. 12일간 병원비는 약 6800위안(약 131만원) 정도. 외국인은 지역 건강보험 대상자가 아니라 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한다. 하루 평균 입원비 400위안(식비, 간호비, 진찰비 등 포함)에 각종 약값·검사비를 합한 금액이다.
병원비는 현금, 카드는 받지 않고 오로지 위챗, 알리페이 QR코드 결제만 가능하다. 코로나19 격리환자와 의료진의 비대면 접촉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모바일 결제를 할 수 없었던 기자는 현지 지인에게 QR코드를 전송해 병원비를 대신 결제해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6주째 격리생활···'봉쇄' 불안 두려움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격리병동에서 ‘탈출’해 중국인 10여 명과 함께 또다시 구급차를 타고 격리 호텔로 이동했다. 그곳서 추가로 14일+1일간 격리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PCR 검사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기자는 베이징 도착 후 거의 한달 만인 4월 8일 귀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격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자택에 도착해서도 아파트 단지 주민위원회로부터 2주간 자가 격리하라는 통보를 갑작스레 받아 집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다. 원래는 일주일간 건강 모니터링만 하면 된다고 전달받았는데, 최근 동네 인근 쇼핑몰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방역 수위가 높아졌다.
완치 후 2주가 지난 데다가, 수차례 PCR 검사서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바이러스 덩어리로 취급받는 느낌이다. 코로나 감염 확산세가 심각한 상하이에선 확진자가 완치 후에도 감염을 우려한 주민위원회의 거부로 귀가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현재 기자는 가재도구도 아직 제대로 없는 집에 갇혀있다. 그나마 현금을 받는 인근 한인마트에 생필품 조달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필요한 생필품을 주문 배달시키고 결제는 대문 밖 주머니에 기자가 미리 넣어둔 현금을 배달원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베이징도 상하이처럼 갑자기 봉쇄돼 한인마트 배달마저 끊기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이 코로나 확진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국경 걸어 잠근 중국…가깝지만 먼 이웃나라
전 세계가 오미크론 확산세 속 ‘위드 코로나’에 동참하며 해외 입국자 격리 조치를 속속 풀고 있지만 중국만은 예외다. 일일 확진자 수가 2만명을 넘어서는 가운데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며 도시를 봉쇄하고 국경 빗장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나마 일주일에 1~2편 운행됐던 한·중 주요 도시간 항공편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중국의 까다로운 방역수칙에 따라 무더기로 결항됐다. 한국인 입국 검역 조건도 한층 강화됐다. 출국 일주일 전 PCR 검사, 이틀 전 PCR 검사와 N 단백질 항체 검사에다가, 출국 12시간 이내 PCR 검사 음성 결과 확인서도 있어야 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있다면 완치됐더라도 별도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에 입국해서도 최소 2~3주 지정 시설에서 격리된다. 한국인들 사이에선 “사실상 오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뜩이나 악화하는 양국 국민간 감정으로 한·중간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데, 상호국 인적 왕래조차 제한돼 중국은 사실상 ‘가깝지만 먼 이웃’이 됐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양국 정상이 지정한 한·중 문화 교류의 해 의미도 빛이 바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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