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로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이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카지노'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하다.
강윤성 감독은 '차무식'이라는 인물과 그의 흥망성쇠를 통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그만큼 '차무식'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인물이다. "오직 최민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강 감독의 말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25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최민식은 '차무식'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카지노'에 푹 빠졌고 '차무식'으로서 마음껏 유영했다. 시청자들이 '카지노'와 '차무식'에 완벽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강윤성 감독은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주는 무게감을 믿었다. 최민식의 우려에도 CG의 도움을 받아 젊은 시절부터 마지막 장면들까지 직접 연기하도록 했다. 긴 호흡이 주는 캐릭터 빌드업의 힘을 알고 있어서였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다루고 있으니까요. 학원 운영부터 불법 카지노에 손을 대는 시점까지는 걷어낼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대본을 돌려 보고 구체화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기시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 감독은 오히려 그걸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빌드업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시청자들이 따라올까?' 우려도 했는데 강 감독의 큰 그림이 있었죠. '초반만 넘어가면 된다' '꼭 필요하다'라고 했어요. 강 감독이 단단했기 때문에 뒤따르기도 한 거죠."
디에이징 기술의 도움을 받아 '차무식'의 30대 시절을 직접 연기한 소감도 밝혔다. 최민식은 "다시는 못 할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쳐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어우 저 이제 그런 거 안 할래요. 어떻게 안 되더라고요. 얼굴은 젊어질 수 있는데 몸이 안 돼요. 하하하. 30대 분량도 (이)규형에게 넘길까 했었는데요. 강 감독이 '여기서부터는 형이 해야 한다'고 하셔서 '아이구 모르겠다. 빨리 지나가라'라는 마음으로 임한 거죠."
'차무식'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지나 우연한 일로 학생 운동에 휘말리고 북파공작원을 지나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로 자리 잡게 된다. 최민식은 '차무식'을 단선적인 빌런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선적인 표현은 지양했어요. 시나리오에도 그렇게 묘사되어있었고 저 역시도 '차무식'이 단순한 '빌런'으로 표현되는 게 싫었어요. 사람들이 100% 착한 놈, 나쁜 놈이 어디 있겠어요?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모두 다중적인 거죠."
최민식은 '차무식' 캐릭터의 주안점을 "평범한 인상"이라고 표현했다. 상징화된 악당으로 그려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거들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거. 처음부터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게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았어요. 이 남자가 좌충우돌한 삶을 살며 진흙탕으로 빠지게 되는데 잘 들여다보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거. 그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느낌으로 연기한 거예요."
그는 평범한 캐릭터를 만드는 만큼 외적인 부분을 유달리 가꾸거나 변화시키려 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빈틈도 있고 정도 있는 그런 느낌으로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북파공작원 출신이더라도요. 물론 다이어트를 하고 (촬영을) 갔으면 조금 더 좋긴 했겟지만요."
최민식은 '차무식'을 잡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코리안데스크 '오승훈'(손석구 분) 경감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이 원하는 누아르적인 요소가 배제되었다"며 오히려 그 점이 작품과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누아르 같은 장르일수록 대결 구도를 원하죠. 분명한 대의가 있어야 할 거 같고요. 제가 (손)석구에게 감탄한 건 '오승훈' 경감이 오히려 그런 점들을 모두 배제했다는 점이에요. 어쩌다가 필리핀으로 발령이 났는데 어영부영 '차무식'과 엮이게 되고 경찰의 본능과 개인적인 감정 등이 빌드업되며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게 특별하다고 봤어요. 처음부터 에너지가 발산되는 게 아닌데 이 빌드업 과정에서 서사나 감정선은 더욱 촘촘해지는 거 같아요."
본능과 경험으로 제 삶을 개척해나가던 '차무식'이 수족처럼 생각하던 '정팔'(이동휘 분)에게 배신당하게 되는 결말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오가 갈리기도 했다. 최민식은 "'차무식'에게 '정팔'은 본능적으로 챙겨주고 싶은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차무식'은 계산이 빠른 친구죠. 하지만 '정팔'의 경우는 다르다고 봤어요. 본능적으로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표현하면 극단적인데 강아지 같은 녀석이에요. 말도 잘 안 듣고 실수도 많이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아이 있잖아요. 버릴 수 없는 그런 친구. '정팔'이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최민식은 '정팔' 역을 맡은 이동휘와의 호흡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최민식은 "'정팔'은 '차무식'에게 생명의 은인 같은 존재도 아니잖아요? '차무식'이 느끼는 애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어요. 전사를 따로 집어넣기보다는 배우들끼리의 호흡이나 티키타카로 이뤄내야 한다고 보았죠. 우리가 메꿔야 했어요. 카지노라는 험악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형 동생 느낌을 줘보자고 하고 만들어냈죠. (이)동휘가 잘 해줬어요. 실제로도 정감을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기 경력 35년 차인 명배우지만 그런데도 새롭게 느껴지는 장르나 욕심 나는 장르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저 로맨스요! 하하하. (이)해영 씨와는 진한 멜로를 찍어보고 싶고, (김)주령 씨와는 로코를 해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주령 씨에게 로코 한번 찍어보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하더라고요. '정신 차리라'고 혼낼 줄 알았는데. (이)해영 씨는 '빈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훌륭한 배우들이라서 함께 코미디나 진한 로맨스 한번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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