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 원장이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회색코뿔소의 위기'를 넘어선 '블랙아이스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보이지 않는 얇은 얼음막에 잘못 미끄러지면 곧바로 연쇄 사고로 이어지듯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경제 전반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강조한 것이다.
'망국병'으로 불리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컨트롤타워 구축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아닌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진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생산가능인구의 미래 예측성을 높이고 국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증유, 위기의 韓경제…세계 성장률 '반토막'
이 원장은 지난 8일 아주경제신문과 만나 "한국 경제가 이렇게 위기인 적은 없었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7일(현지시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6%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세계 경제는 기존 2.6%에서 2.7%로 올려 잡았다.
우리 성장률이 세계 경제성장률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심각한 저성장 문제에 맞닿아 있고, 저출산은 특히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저출산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한미연이 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세계적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저출산 상황을 유지하면 2750년께 국가 소멸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원장이 "지금 상황을 계속 유지하면 변곡점 없이 인구가 계속 줄어들기만 할 것"이라며 "국가와 기업, 개인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삶이 위기인데"…2030, 생존 본능>종족 본능
그렇다면 현재의 20~30대가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원장은 단순히 한두 가지 문제로 짚을 수 없는 복합적 문제가 작용한 결과로 봤다.
그는 "결혼과 출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며 "부동산, 교육, 기업 복지, 재정 등 본인에게 주어진 여러 환경에 따라 개인이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종족 보존의 본능을 멈출 때는 개인의 생존이 위협받을 때뿐"이라며 "생존의 본능이 종족의 본능을 넘어선, 각자의 삶이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4차까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숨가쁘게 내놓았다"면서 "복합적 정책을 쏟아냈고 방향은 일정 부분 맞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정책이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는 "가족·출산 개념이 남녀, 세대별, 계층별로 다르다"며 "20~30대 가임기 여성을 둘러싼 환경이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은 실행까지 여러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사권·예산권 쥔 '컨트롤타워' 필요…구체적 플랜 있어야"
이 원장이 내놓은 대안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관의 설립이다. '인구부(가칭)' 등 정부 부처로 추가할 수도 있다.
그는 "현재 인구 문제는 다른 모든 문제를 넘어설 정도로 심각하다"며 "젠더, 세대, 계층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증폭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은 없고 그때그때 '땜질식 대책'만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력이 없다 보니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아니라고 봤다.
이 원장은 "관료사회는 이미 안정화됐고, 부처 이기주의가 팽배한 상황"이라며 "부처 이익에 반해서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실질적 대책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부처를 설립해 전권을 주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의 저출산 상황에서 법무부가 내놓은 재외동포청과 출입국·이민관리청 설립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원장은 "저출산과 이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부족은 이민청을 하나 설립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단순히 이민정책을 통해 인구를 늘리겠다는 목표보다는 어느 정도의 인구를 산업별·국가별로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셋째 출산하면 특진하는 회사…"기업이 인구회복 앞장서야"
국가의 역할만큼 기업의 노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그는 "개인은 정책과 제도에 맞춘 최적화된 인생을 설계하기 마련"이라며 "하루의 절반은 직장에 묶여있는 만큼 직장에서 출산과 결혼의 우호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연이 '기업이 인구회복의 길에 앞장선다'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원장은 "육아휴직 과정에서 소득 대체율은 평균 45%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대기업, 공기업, 은행 외에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고 복귀 후 승진과 커리어 전반에 지장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 제도가 잘 돼 있는 기업으로는 한미글로벌을 꼽았다.
한미글로벌은 두 자녀 이상 출산한 직원에 대해 최대 2년의 육아휴직 기간도 근속 연수로 인정해 휴직 중에도 진급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했다.
셋째를 출산한 직원은 승진 연한이나 고과 등의 조건 없이 즉시 특진시키는 파격적인 제도도 도입했다. 넷째부터는 출산 직후 1년간 비용과 상관없이 육아도우미를 지원한다.
이 원장은 "직장 전반에 가족친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이를 시행하기 힘들다"며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은 기업 입장에선 전부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제안한 방안은 육아세액공제다. 정부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해 최대 35%의 전폭적인 투자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처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저출산 문제도 세액공제 등의 방안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보면 물적자원만 투자가 아니다"라며 "출산도 인적자원의 투자로 보고 이를 적극 지원하는 기업에는 세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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