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권의 각사별 예수금·대출금 시장 점유율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시장을 적절히 분할해 이익을 취하는 이른바 '쿠르노 과점' 체제가 지속된다는 해석이 나오는 만큼 은행권 체질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은행별 원화예수금 점유율은 △KB국민은행 20.6%(335조원) △NH농협은행 18.7%(303조원) △신한은행 18.3%(297조원) △하나은행 17.9%(292조원) △우리은행 16.9%(275조원) 순이었다. 같은 기간 원화대출금 점유율은 △KB국민은행 19.3%(336조원) △하나은행 16.5%(287억원) △신한은행 16.4%(286조원) △NH농협은행 15.8%(275조원) △우리은행 15.7%(274조원)로 집계됐다. 예수금은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예금 자금을 뜻하고, 대출금은 사실상 수익을 내는 주 수익원으로 꼽혀 해당 자금들은 은행들의 영업력 척도로 여겨진다.
눈여겨볼 점은 수년간 해당 점유율 수치들이 1%포인트 안팎 변동만 보이며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말부터 지난해 3분기 말까지 수치를 확인한 결과 KB국민은행의 예수금 점유율은 20~21%대를 유지했다. 신한은행은 17~18%대, 하나은행은 16~17%대, NH농협은행은 17~18%대, 우리은행은 16~18%대에서 변동했다. 대출금 점유율 역시 KB국민은행 19~20%대, 신한은행 16%대, 하나은행 15~16%대, NH농협은행 15~16%대, 우리은행 15~16%대를 기록했다.
금융권은 무엇보다 최근 5년간 예수금·대출금이 모두 증가했음에도 점유율이 유지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2023년 3분기 말 기준 5대 시중은행 예수금은 1504조9442억원으로 2018년 말 대비 36.8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출금도 1459조3289억원으로 2018년 말 대비 35.38% 늘었다. 시장 규모가 커졌지만 각 은행별 시장 점유율은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 '쿠르노 과점' 체제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에 따른 금융 리스크들이 산적하면서 은행들이 암묵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가질 않는 쿠르노 과점 체제를 보이고 있다"며 "어느 한 곳이 전면적 변화를 가져가면 타사들도 이에 상응하는 변화가 불가피해 이에 따른 불확실성 또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르노 과점 해소를 위해선 정부가 지난해 초부터 추진한 은행권 체질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당국은 지난해 은행권에 대해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수요는 미미했다. 그나마 DGB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전환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당국은 은행과 비은행 간 경쟁 확대 계획도 내놨지만 업권 간 이해관계 조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은행권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 등이 은행권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해당 논의가 흐지부지된 상태다.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최근 당국의 은행권 개혁 움직임으로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 개편,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지만 소비자들이 크게 체감할 만한 전면적 변화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기존 은행권이 단순 예금을 유치하거나 대출이자를 받는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전면적 경쟁을 할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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