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60 평생을 살면서 돌이켜 보면 그 어느 때고 나라가 어지럽지 않을 때가 없었다. 뉴스를 보면 하루도 정쟁이 끊이지 않고 민생은 바닥을 치며 끔찍한 범죄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일상은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언론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나라가 어지러운 원인을 천착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모든 질서와 의식은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공동체 생활과 정치영역에서는 더욱 더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겪지 않은 데다 학문 영역에서도 서양학문을 따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양복을 입고 서양식의 민주주의를 따라 하기 바쁘다 보니 우리 옷을 버리고 우리 식의 민주주의를 버린 것이 문제가 아닐까?
헌법과 행정법 등 공법을 배우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대부분의 철학과 이론이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법학에서는 이를 계수법(繼受法)이라 한다. 각급 학교에서 외국 제도와 법을 금과옥조로 알고 가르치니 우리 고유의 혼과 민족적 열정은 애당초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고유의 법 정신은 어데서 찾을 수 있을까? 오랜 세월 연구 끝에 환웅의 개국기사를 공법적 측면에서 접근하니 우리 식으로 민주주의를 해석하고 나라를 열며 국가 구성원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고유법(固有法)의 연원을 찾아 체계를 갖추며 국가공동체를 운영하면 나라의 어지러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아니라는 비판이 여기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다.
고조선 개국과정 기사 재해석
고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서는 개국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할(弘益人間)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神市)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在世理化)하였다.”
서거정의 『동국통감』 이래 조선조 문헌에서는 환웅이 임금에 오르는 과정을 국인입위군(國人立爲君) 즉 백성이 임금을 세워 임금으로 하게 했다는 식으로 기술한다. 권람의 『응제시주』에서는 국인입이위왕(國人立以爲王), 홍만종의 『순오지』에서는 민추작군장(民推作君長)이라고 한다. 백성이 추대해서 군장, 임금으로 삼았다는 대목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치자인 군주를 만드는 주체가 백성이며, 국가는 백성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는 소극적인 덕치관념에 그치지 않고 세습적 전제군주를 거부하면서 국민주권론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함의를 갖고 있다. 환웅이 임금으로 오르는데 사상의 자유시장이 원천적으로 기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익인간: 공리주의, 박애주의, 평화주의 근거
재세이화: 자연법주의, 이성주의, 교육입국 실천
이는 우리 민족이 국가를 창건하던 역사적 경험을 신화형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민족의 조상인 단군이 우리의 역사의식 속에서 되살아나고, 역동적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주요한 개념은 고조선이 도읍한 곳이 신시이며,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개국의 이념으로 표방한 것이다. 먼저 신시는 신국 즉 신의 도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제정일치의 도시국가를 뜻한다. 고대국가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제사장이 다스리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고조선의 개국과정에서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무리들의 뜻을 받아 그들을 중심으로 도시국가(부족국가)를 세운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신단수 아래 신시는 국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론의 장이며, 루소 식 일반의지의 집결의 장소이다. 이에 대해서 신시를 경제적 의미의 계(契, 호혜 circle), 호혜시장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사실 이 같은 경제적 시장 접근법이 재화와 용역뿐 아니라 사상의 시장에서도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 진리에 도달하게 하고 사회적 효용성을 증대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고대인이 생각했을 수 있다는 상상은 우리의 사상적 근원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어느 나라도 고대국가 개국과정을 이처럼 명료하게 설명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즉 고조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진리 즉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에 의해 결단을 내리고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홍익인간은 내적으로 복지공동체 건설을 뜻하며, 외적으로 평화로운 인류사회 건설의 이상을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지국가와 국제평화주의를 헌법이념으로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또 재세이화라고 하는 것은 이치로써 백성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이치는 법률과 도덕 등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규율이기도 하며, 자연법이기도 하다. 홍익인간 사상에서 공리주의와 박애주의, 평화주의의 위대한 선언을 찾을 수 있다. 재세이화 사상에서 자연법주의와 이성주의, 교육입국의 담대한 실천을 볼 수 있다. 또한 신바람의 풍류문화를 즐기며, 기를 마음껏 발산하려고 한다. 이 힘찬 기의 발산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고도의 문명국가의 창조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요컨대 떼거리즘(떼거리ism)과 조급병, 홧병, 황금만능주의 등 한국병을 치유하려면 우리 조상이 하늘을 열(개천 開天) 때 주창했던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을 배우며 연구하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식으로 생각하고 우리 몸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현대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