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WWDC) 2024의 문을 연 애플은 시장의 최대 관심사였던 오픈AI와의 협업을 공식 발표했다. 아이폰의 음성비서 ‘시리’에 오픈AI의 챗GPT가 탑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105분 넘게 이어진 애플의 기조연설에서 오픈AI와 챗GPT에 대한 언급은 단 2분에 그쳤다. 애플이 AI 혁신을 몰고 온 오픈AI와 손을 잡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자이기도 한 오픈AI를 견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연설자들은 이날 기조연설 대부분을 자사가 개발한 기술 및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자체 개발 기술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며 “챗GPT는 기조연설 후반부에 잠깐 언급된 정도”라고 평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샘 올트먼 오픈AI CEO 역시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객석에서 기조연설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기조연설이 끝난 후 소셜미디어 X(엑스)를 통해 애플과의 협업에 대해 “매우 기쁘다”고 썼다. 애플과 오픈AI 양측은 파트너십 조건을 비공개로 하고 있다.
애플은 챗GPT가 자사 첫 AI 시스템인 ‘애플 인텔리전스’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시사했다. 애플의 여러 옵션 중 하나라는 것이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 부사장은 챗GPT를 시작으로, 구글의 제미나이 등 타사 챗봇이 아이폰에 탑재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용자는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특정 모델, 예를 들어 창의적인 글쓰기나 코딩에 선호하는 모델을 선택하고, 우리는 이를 지원하려고 한다”며 “예를 들면 구글 제미나이와 같은 다른 모델과의 접목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애플은 환각 현상(실제로 없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를 사실처럼 말하는 것) 등 AI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도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애플이 공개한 시연 영상을 보면 시리는 사진첩에서 질문자가 원하는 사진을 찾아내거나, 요리 중 메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사진 정리나 식사 예약 등 논란의 여지가 적은 작업에 AI 기능을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챗GPT를 옵트인 서비스(opt-in service)로 제공해, 사용 전 이용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예컨대 이용자가 시리를 통해 챗GPT를 사용하기에 앞서 시리가 “챗GPT 사용 권한을 요청하겠습니까?”라고 묻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개인정보보호 논란을 차단하고, 애플의 AI 도구와 챗GPT를 분리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이번 협업이 실리콘밸리의 권력 구도 변화를 방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애플이 오픈AI와의 경쟁에서 백기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내부적으로 챗GPT 대항마인 '프로젝트 에이잭스(Ajax)'라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을 연구 중이다. 그러나 개발에 난항을 겪으며 오픈AI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챗GPT의 승리란 평도 많다. 오픈AI는 총 22억개에 달하는 애플 기기 사용자들에 접근할 기회를 얻었다. 챗GPT 사용을 꺼리거나 관심이 없던 이용자들은 애플을 통해 챗GPT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애플은 AI 모델 실행을 위해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Private Cloud Compute)라는 자체 서버를 통해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AI 모델 훈련을 위해 사용자의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애플 기기에서의 이용자들이 챗GPT에 요청한 정보들은 오픈AI 서버로 전송되지만, 이용자 정보는 오픈AI에 공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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