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이 중대 범죄로 번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나아가 사건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기보단 피해자 보호 대책을 위한 통합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8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제폭력으로 형사입건된 피의자는 2019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55.7%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구속된 인원은 1242명으로 전체 검거인원(5만6079명) 중 2.2%에 그쳤다. 현행 구속 제도 요건이 피해자 보호보다는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제폭력은 가정폭력·스토킹 범죄와 달리 특별법이 없어서 피해자 보호 조치가 공백 상태다.
그러나 교제폭력은 폭행이나 협박 범죄로 다뤄진다. A씨는 이별 통보 후 남자친구에게 흉기로 살해 협박을 당했지만 특수협박 사건으로 분류돼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만 받았다. 112시스템 등록과 맞춤형 순찰, 스마트워치 지급 등이다. 구속되지 않은 가해자는 버젓이 스토킹 행각을 벌였고 결국 무단으로 가택에 침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법원과 수사기관이 교제폭력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다. 민고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진서·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기존에 신고되었던 사건들과 함께 또다시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에 구속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제폭력 피해자도 접근금지 조치 등을 받을 수 있도록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특별법 같은 후속 조치만 고려하기보다 장기적으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종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민 변호사는 “진주 편의점에서 쇼트컷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일어났던 폭행 사건도 교제폭력 특별법이 있더라도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며 “대검찰청에서 혐오 범죄라고 인정했는데, 향후 혐오 범죄에 대해서도 사회적 인식이 생기면 또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특별법은 개별 범죄 특수성을 고려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외 범죄는 여전히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앞서 발의된 교제폭력 특별법도 교제관계를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공통된 문제가 있다”며 “산발적인 여성폭력 관련 특별법을 전부 통합해 형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달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스토킹대응 역량 강화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이은애 총경(경기북부청 여성청소년과장)은 “국내 젠더폭력 대응체계는 특별법 중심이어서 특별법 체계로 포섭하지 못하는 공백이 있다”며 범죄 피해자 보호법에 다양한 보호조치 수단을 통합하거나 체포 필요성에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아닌 재범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명시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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