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차이나' 레거시칩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계가 미-중 반도체 전쟁을 살짝 비껴간 레거시 반도체 생산에 사활을 건 영향이다. 미국의 견제를 비웃듯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중신궈지(SMIC)는 세계 3위 기업에 오르며,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지난 18일 발표한 ‘세계 팹(반도체 공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월간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량은 올해 890만개로 전년 대비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파른 성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SEMI는 내년에는 1010만개로 올해보다 14%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기간 세계 평균 성장률인 6%와 7%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응해 투트랙 전략을 취했다. 비교적 생산이 수월한 레거시 반도체부터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면서, 동시에 첨단 반도체 개발도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내년에는 세계 웨이퍼 생산량의 약 30%를 중국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은 대만 TSMC나 삼성전자에 비해 뒤처지나, 자동차·가전 등에 사용되는 레거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생산능력 확대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는 중국의 수출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해관총서(세관)에 따르면 1~5월 중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626억1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2% 증가했다. 5월 한 달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8.47%늘어난 126억3400만 달러를 기록해 선박(57.13%)에 이어 수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이 17.2%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특히 SMIC가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SMIC는 1분기 글로벌 시장점유율 6%를 기록하며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와 대만 UMC를 제치고 세계 3위 파운드리로 올라섰다. 격차가 크긴 하지만 TSMC(62%)와 삼성(13%)만 앞에 두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급성장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자리한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아낌없는 투자를 단행했다. 2014년 1387억 위안의 1차 펀드, 2019년 240억 위안의 2차 펀드에 이어 지난달에는 무려 3440억 위안(약 64조원)에 달하는 3차 펀드까지 조성했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SMIC 주가는 지난 1개월간 19% 넘게 상승했고, 중국 증시에서 반도체 업종은 이달 들어서만 8% 가까이 뛰었다.
서방은 이러한 상황이 탐탁지 않다. 레거시 반도체는 성능은 낮지만 자동차·가전제품·군용무기 등 다양한 제품군에 사용된다. 첨단 반도체가 세계 반도체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 미만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를 우려해 지난달 대중국 관세 인상 조치를 발표하면서 28나노(㎚·1나노=10억분의1m) 이상의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2025년까지 50%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관세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이 저가 레거시 반도체를 계속 공급하면서, 세계 반도체 가격이 바닥을 칠 것이란 예상이다. 세계 전기차·태양광 패널 시장을 휩쓴 중국의 저가 공세가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SCMP는 애널리스트들을 인용해 "중국이 반도체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늘리면 향후 2년 동안 과잉 생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중국 반도체 업계가 자국 내 수요를 웃도는 공급을 처리하기 위해 세계 시장에 반도체를 쏟아낼 경우, 반도체값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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