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3일, 혼다와 닛산자동차는 경영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협의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표하여 일본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두 회사가 지난 3월부터 기술 분야 협력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였고 8월에는 포괄적 업무제휴, 탑재하는 소프트웨어와 부품 공통화를 협의하는 등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두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경영통합은 기술협력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일본 자동차산업이 역사상 중대한 변곡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혼다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반면에 닛산의 주가는 급등하였다. 닛산의 경영 위기를 혼다가 구제해 주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시장에 있다는 증거다. 혼다와 닛산의 시가총액은 각각 6.7조 엔과 1.6조 엔이다. 혼다가 닛산의 4배에 달한다. 최근의 경영 성과도 다르다. 2024년 3월기 혼다와 닛산의 영업이익은 각각 1조 3,819억 엔과 5,687억 엔이다. 이익 면에서도 2.4배이다. 닛산은 전기차 시장에 일찍부터 뛰어들었다. 그러나 중국에 밀렸다. 반면 요즘 잘 팔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는 경쟁력이 없다. 경영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닛산은 한국 시장에서도 실패하여 철수한 회사이다. 이러한 회사를 혼다가 끌어안고 가는 모양새이다. 가슴 한구석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다. 과연 이 통합은 일본 자동차산업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업을 통합하는 이유는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당연한 이치다. 12월 23일의 경영통합 발표에서도 두 회사의 사장님들은 이를 언급하였다. 혼다의 미베 토시히로 사장은 “시너지 효과의 가능성은 생각보다 더 크다”라고 말하였고 닛산의 우치다 마코토 사장도 “규모확대의 장점은 큰 무기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두 회사의 경영통합 발표 이후 일본의 언론에서도 글로벌 판매 대수에서 도요타(1,123만 대)와 폭스바겐(923만 대)에 이은 세계 3위의 거대 자동차 그룹(813만 대)이 탄생할 거라고 크게 보도하였다. 이 거대 그룹에는 혼다와 닛산, 그리고 미쓰비시 자동차까지 포함된다. 닛산은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 주주이다. 그런데 이 회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달성될 것인지 의문이다. 경영통합 발표의 기자회견에서 두 회사의 사장님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큰 변화 요소로서 자동차의 전동화와 지능화를 들었다. 전기차의 대두와 자율주행이 그 핵심이다. 닛산은 세계 최초로 양산 전기차를 만든 회사이지만 가격경쟁력에서 중국에 패배하였다. 일본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의 디지털화에 약하다. 혼다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경험한 일본차와 한국차의 실내 디자인과 디지털화의 현격한 격차가 이를 말해준다. 자율주행에서도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전통과 기본을 중시하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높은 기술력을 가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시장의 변화 속에서 이러한 전통과 기술이 살아남기는 어려운 환경이 전개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이 기업들이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여 변화될 수 있느냐에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일본의 전자산업이 급속히 붕괴하였듯이 이제부터는 일본의 자동차산업이 붕괴할 수도 있다.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회사들이 모여 거대한 그룹을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20여 년 전에 발간한 저서 “일본경제, 기업으로부터의 혁명: 대조직에서 소조직으로”에서 일본기업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적하였다. 일본기업은 세상이 급속히 변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갈파한다. 그 변화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이에 따른 시장화/소조직화이고, 둘째는 동아시아의 공업화이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이 크게 저하하고 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왕성한 스타트업의 발달과 기술혁신으로 정보기술을 독점하면서 부가가치를 싹쓸이하고 있는데 일본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기업 체제에서 하드웨어 생산에 매달린다. 이 와중에 중국의 산업화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 쓰나미의 첫 번째 희생양이 바로 전자산업이다. 이제 그 쓰나미가 자동차산업으로도 밀려드는 모양새이다. 이렇게 심각하게 돌아가는 상황임에도 일본의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저 예전과 같이 기업 통폐합으로 규모를 키워서 대응하면 될 것이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혼다와 닛산의 경영통합이 이러한 사례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필자의 우려가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상기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일본기업은 왜 경제환경의 커다란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조직이 노령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젊은 시절에 간단하게 할 수 있었던 동작이 불가능하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외부세계가 전혀 변화되지 않았더라도 나이를 먹은 기업은 침체되어 간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성숙하면 구성원은 조직의 영속성을 자명한 공리로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영달과 지위의 보전만을 생각하게 된다. 의사결정과정이 루틴화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지 않게 된다. 사내의 인사문제만이 관심사가 되고 회사의 명운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전통만을 중시하고 과거의 영광에 집착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의 젊음을 회복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젊음을 회복할 수 있는가? 방법은 두 가지이다. 오래된 기업을 퇴출시키고 새로운 기업을 등장시켜야 하는 것이 첫째요, 살아남은 기업은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철저하게 내부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둘째이다. 오래된 기업을 퇴출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한다. 퇴출된 종업원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노동시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오래된 기업을 퇴출시킬 수 없다. 너무나 많은 희생을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이 그러했다. 기업간 거래도 자유로워야 한다. 계열화되고 배타적인 기업간 거래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저해한다. 종래의 기업이 다 해먹기 때문이다. 기업의 신진대사가 잘 될 리가 없다. 일본의 기업간 거래가 지금까지 그러했다. 구태의연에 익숙한 기업내부의 규율을 다잡을 혁신이 필요하다. 우수한 인재가 활약하고 그 성과를 보상하는 인사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내부의 신진대사가 정지된다. 지금까지의 일본기업 인사제도가 그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못하는 경영자를 퇴출시킬 수 있는 금융시장의 감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경영자들은 어떠한가? 우수한 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하기 보다 내부에서 승진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주식의 상호보유를 통해 경영권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다. 경영자들이 위기의식을 가질 리가 없다. 이와 같은 기업지배구조를 온전히 개혁하지 않은 채 과연 규모만 키우는 경영통합이 성공할 수 있을까? 너무나 다른 기업문화를 고려해 볼 때 혼다, 닛산, 미쓰비시 자동차라는 세 개의 기업이 유익한 화학반응을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 기업으로 변신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노구치 교수는 상기의 저서에서 참으로 섬뜩한 예시를 보여주었다. “침몰한 거대전함”의 사례이다. 2차대전 말기, 일본해군은 태평양에서 절망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때 활약한 것이 ‘무사시’와 ‘야마토’ 두 거대함선이다. 이 거대함선은 각각 1944년 10월과 1945년 5월에 어뢰공격과 함재기 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침몰하였다. 누구도 이 거대함선이 침몰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거대함선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가 있었다. 그리고 거대함포를 가진 거대함선은 분명 유리한 점이 있었다. 적선 함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거대함포를 발사할 수 있다면 승리는 명확하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거대함선은 기동성이 떨어졌다. 작지만 수많은 적 함재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뢰 공격에도 취약하였다. 거대함선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과 관료화된 의사결정이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거대함선을 전장으로 향하게 하였다. 노구치 교수는 이 과정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 리더들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지금의 일본기업들이 추구하는 거대 규모의 장점에 대한 기대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해군이 맹신한 거대함선의 불패 신화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기업통합의 성패를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개혁을 압박하는 일본의 제도적 여건은 여전히 개혁 과정에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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