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해 25년째를 맞이한 '세계시장 진출전략 설명회'에는 500명가량 참석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년도 수출전략 수립에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기로 가득하였다. 코트라(KOTRA)는 해외 현장에서 관찰한 수출 기회를 제시하기 위해 2000년부터 세계시장 진출전략 설명회를 매해 연말연시에 개최해 왔다. 129개 해외 무역관과 북미, 중국, EU 등 10개 해외지역본부가 약 석달 동안 꼼꼼히 조사하고 작성한 세계시장의 현지 이슈와 기회, 그리고 진출전략을 해외 지역본부장 열명이 직접 우리 수출 기업에 제시하는 KOTRA 대표 설명회이다.
설명회 참가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2025년도 이슈는 보호무역주의였다. 이는 20여 일 후면 취임할 트럼프 2기 정부에 대한 우리 기업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관세 인상을 통한 자국 제조업 부흥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일례로 취임도 하기 전에 펜타닐과 불법이주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며 자신의 치적이라고 삼아온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조차 무력화할 수 있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 심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설명회 연사로 나선 일본지역본부장에 따르면 일본은 트럼프 당선자의 관세 공약 추진으로 제조업 및 수출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인상 추진은 미국 내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에 따른 미국 경제 어려움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미국의 일본 자본재 수입 수요 감소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경우 미국의 수입 관세 인상으로 대미 수출 감소 우려와 함께, 미국의 불법 이민 규제로 이민자가 중미 국가로 보내는 외화 송금액이 줄어들 수 있어 경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편 인도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인도에 긍정적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 2024년 인도의 대미 수출액은 775억 달러로 인도 수출의 가장 큰 비중인 17%를 차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에 따르면 아세안에서는 중국에 대한 선호도가 전년 대비 12%p 증가한 51%를 기록하면서 최초로 미국에 대한 선호도를 추월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중국이 주도하는 BRICS 파트너국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네 나라가 지난 10월에 가입한 것과 중동사태 장기화에 따른 동남아시아 무슬림 국가의 서방에 대한 반감 확대가 원인이다. 한편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증가하면서 아세안 주요 나라는 중국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은 관세 문제 이외에 방위산업, 청정산업에 다가올 변화에 대해 관심이 높다.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지원 축소와 같은 미국의 청정산업 투자 감소가 EU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펼쳐온 EU가 청정기술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도 존재한다고 유럽지역본부장은 현지 분위기를 전하였다. 또한 NAT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축소되면 EU는 방위비 증가와 방산 분야 투자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시 유럽 기업들의 재건산업 참여는 경제 활력 요인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날 모인 10명의 해외지역본부장은 미국의 신정부 출범에 따른 환경 변화 속에서 나라마다 분야는 다를 수 있지만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고, 그 핵심은 산업 경쟁력 확보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자국의 발전을 위해 핵심 파트너 국가로 한국과의 협력을 원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협력은 산업경쟁력 강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유럽과 일본은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로 숙련된 산업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미국도 늘어나는 투자에 비해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중국 또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고도화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경제권의 정책에 따른 협력 수요는 로봇과 AI를 활용한 제조 생산성 향상이라고 현장의 소리를 전했다.
한편,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생산연령인구가 70%를 넘는 노동력이 풍부한 국가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해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어 2072년이면 OECD국가 중 유일하게 40%대인 가장 적은 생산연령인구 비중을 가진 나라가 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보다 빠른 고령화 속도로 인해 정부와 산업계는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월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 26개를 공개하였다. 당초 10개 과제를 모집할 예정이었지만 213개 수요가 몰릴 정도로 산업계의 높은 참여로 인해 26개로 확대하였다는 후문이다. 2028년까지 200개 프로젝트를 선정해 정부와 민간의 자금 투자로 산업경쟁력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패러다임 변화의 시기에는 적응이라는 도전과제도 있지만, 거대한 기회라는 측면도 상존한다. 우리보다 양호한 출생률과 이민이라는 대안이 있는 미국, EU, 그리고 아직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에 비해 생산연령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는 우리의 대응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KOTRA 조사 결과 반도체, 자동차·부품 등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에서 일본, 독일, 중국 기업 등과 수출 경합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느 나라보다 더욱 절박하다.
공급망 재편이라는 과제에도 불구하고 IMF, OECD, WTO 등은 내년도 세계 교역이 3.0%에서 3.6%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 산업연구원 등 주요 연구기관에 따르면 우리의 대세계 수출 또한 1~3% 내외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세계교역 증가와 주요 경제권의 산업고도화 추진이라는 패러다임이 만들어낼 새로운 시장에서 제조업 생산 현장의 효율성 강화를 위한 AI 자율제조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의 노력이 수출 동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 주요 이력
▷경제통상협력본부장(상임이사)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테크노경영학 석사▷ ▷KOTRA아카데미 아카데미DX담당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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