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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의 해외 특허소송이 장기화되면서 기관투자자(LP)들이 분쟁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천억 원대 배상금은 물론 고의성이 인정되면 3배까지 손해배상액이 늘어나는 등 투자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 지방법원이 이오플로우에 대해 인슐렛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4억5200만 달러(약 6337억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는 이오플로우 자기자본(723억원)의 877%에 달하는 규모다. 판결 직후 주가는 사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투자자 손실이 현실화됐다.
글로벌 기업 애플도 특허 분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024년 1월 애플은 의료기술업체 마시모와의 특허 소송에서 패소해 애플워치에서 핵심 기능인 혈중 산소 포화도 측정 기능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애플의 헬스케어 분야 진출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요인으로 보인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IT 분야 지식재산권 분쟁 중 70%가 조정을 통해 해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WIPO는 "특허분쟁은 장기화될수록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며 "조기 조정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특허청도 이러한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허청은 기업들의 특허분쟁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컨설팅을 확대하고, '특허분쟁위험 조기진단 지원사업'을 통해 국내 기업들에 대해 대응 전략 수립을 돕고 있다.
투자업계는 "특허분쟁은 이제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닌 투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LP들의 조기 개입으로 소송 비용을 줄이고 기업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제3자 소송자금(TPLF)이 특허분쟁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2019년 이후 특허소송 50% 이상이 제3자 자금으로 추정되며 일부 해외 투자자들이 특허소송을 통해 기술 탈취를 시도하거나 수익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LP들의 개입은 신중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솔루스첨단소재와 SK넥실리스의 특허 분쟁이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대주주인 솔루스첨단소재는 2027년까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지만 특허소송이 시작되면서 기업가치가 급락해 엑시트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허업계 관계자는 "피고 측인 솔루스첨단소재가 기업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특허소송은 양측 간 협의가 없다면 장기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는 특허분쟁 대응 능력이 투자 결정에 주요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솔루스첨단소재처럼 블라인드펀드가 투자한 기업은 펀드 존속기한 내에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LP들도 투자 심사 과정에서 특허 포트폴리오 검증을 강화하고, 분쟁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내부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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