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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통상 압력이 점입가경이다.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넘어 EU가 다음 타깃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단골 메뉴인 철강, 알루미늄 관세를 말하더니 자동차, 반도체 등 중요 품목들도 거론되고 있다. 세계 보편관세를 말하다가 상호관세를 얘기하고 부가세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이 품목이 끝나면 저 품목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관세가 끝나면 불공정 무역관행, 시장보호 조치, 환율 등 모든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힘은 미국의 국력에서 나온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고 경제력도 막강하다. 세계 최대의 금융자본과 구매력, 즐비한 거대 다국적 기업군과 해외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새로운 발명품은 거의 미국에서 나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의 통상압력은 미국에 대한 도전을 뿌리치고 미국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액션 플랜이고 그중에서도 중국 및 위안화에 견제가 핵심을 이룬다. 미 달러화의 국제 비중은 40% 수준(국제결제 SWIFT, BIS 외환거래 등)이고 유로화, 엔화 등 다른 통화들을 압도하고 있다. 눈엣가시는 중국이다. 대 중국 무역 결제에서 사용이 많아지면서 위안화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달러에 대한 기축통화 지위 도전은 러시아, 남미, 아랍 국가들의 위안화 결제 확대 노력과 디지털 위안화 도입, 금 사재기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에도 달러를 버리는 나라에게는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기축통화의 출발점은 무역이다. 미국은 수십 년 이상 동안 세계 총수출 중 1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었지만 중국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중국은 WTO 재가입 시점인 2001년 세계 총수출의 3.9%를 차지하던 수준에서 2010년 10.5%를 기록한 후 2024년에는 미국(1조7000억 달러)을 엄청난 격차로 제친 1위(2조9000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수입은 거꾸로다. 세계 최대 수입국인 미국은 2024년 중국(2조1000억 달러)보다 6000억 달러 더 많은 2조7000억 달러를 수입하였다. 미국은 연간 1조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무역으로부터 시작된 경제력 약화는 달러 패권의 지위마저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의 통상정책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국내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기 어렵고 반발이 확산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점점 커져 미국인들의 트럼프 지지가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질 2026년 11월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당분간은 트럼프식 통상압박이 지속될 것이다. 세계 각국이 트럼프의 통상압력 파고를 넘기는 쉽지 않다. 첫째, 미국 이외의 나라로 수출을 돌리는 것이 어렵다. 미국의 최대 수입국인 멕시코의 2024년 대미 수출액은 5000억 달러(자국 수출비중 80%), 2위인 중국은 4400억 달러, 3위인 캐나다는 4100억 달러(자국 수출비중 80%)인데 미국이 본격적으로 수입 규제를 할 경우에 이들 국가가 미국 말고 다른 수출 대안을 찾기 어렵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중국 총수출의 15%이지만 중국의 수출 물량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수출 대국들이 쏟아낼 물량을 흡수할 곳은 없다. 결국 각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관세를 물고라도 미국에 수출하는 방법밖에 없다.
둘째, 미국에 대한 맞보복 또한 어렵다. 멕시코와 캐나다의 대미 수입액은 대미 수출액의 50~60%에 불과하다. 덩치가 비교가 안 된다. 중국의 사정도 어렵다. 중국의 2024년 대미 수입은 1600억 달러(6.4%)로 미국의 대중 수입 4400억 달러(비중 13.4%)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희토류 통제, 미국 기업 제재 등 맞불은 놓겠지만 오래 끌기 어렵다. EU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4년 EU의 대미 수입은 3000억 유로, 수출은 4900억 유로로 불균형이 심하다. 게다가 EU 27개 회원국들의 속사정이 제각각이어서 단일대오를 이루기 어렵고 나토 문제 등도 얽혀 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택지도 별로 없다. 관세의 부정적 효과 등등은 국내용이고 대미 협상에서 써먹을 수 있는 협상카드를 찾기 어렵다. 우리 정부의 거버넌스가 무너졌기 때문에 국가교섭력이 현저히 떨어져 한풀 꺾이고 시작하는 형국이다. 진퇴양난이고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통상당국자들이 여러모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유리한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 통상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어렵다. 미국이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그때 가서 걱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미국발 통상압력에 대한 대응도 걱정이지만 국내 경제 문제도 같이 풀어야 한다.
첫째, 얼마 전까지 차이나 피크가 화제였는데 이제 코리아 피크가 걱정이다. 우리의 금년 경제성장률은 1.5% 내외로 하향 수정될 전망이고 잠재성장률 추정치도 낮다. 우리의 생산역량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응하여야 한다. 미국의 보조금과 관세 압박으로 자동차,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대미 투자가 늘었고 여러 분야가 뒤를 잇고 있다. 2024년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능력은 450만대, 국내 생산은 410만대이다. 최근 대미 투자 움직임 등을 감안하면 주요 산업의 해외투자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빠지는 생산능력을 외국인투자로 메우기도 어렵다. 규제가 심한 상황에서 주력업종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면 협력관계로 그나마 들어오던 외국인투자도 멈추게 된다. 좋아지지 않는 국내 여건에서 한국을 떠났던 해외 진출기업의 U턴도 쉽지 않다. 최소한이라도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을 외면하지 않고 사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국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도만 따다가 법률로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기존 규제를 없애는 것이 기업을 돕는 일이 될 수 있다.
둘째, 민생경제를 위해서 국내 시장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물가는 수입을 통해서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다. 수출지향적 문화이지만 수입을 중시하는 사고로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 수입시장은 세계 11위지만 중계무역을 하는 네덜란드(4위)와 홍콩(8위)을 제외하면 사실상 9위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 정당한 수입에는 문호를 열어 주어야 한다. 미국이 제기하는 우리 시장의 문제를 방어하기보다는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고치고 독과점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을 약화하는 전환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내릴 수 있는 관세는 과감히 내려야 한다.
셋째, 정당한 시장 방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역환경이 나빠지면서 불공정, 우회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후판과 합성수지 수입 등에 대한 반덤핑 등 무역구제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 온당하고 필요한 조치로 평가한다. 수출에 지장이 있을까 우려해서 정당한 수입 규제마저 소극적이던 시대는 지났다. 무역위원회를 독립시키고 조직을 키워야 한다. 플랫폼 규제도 통상 때문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있지만 오히려 통상협상의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라도 할 필요가 있다. 역발상의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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