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첨단전략산업기금' 수요를 조사하면서 하루 안에 관련 계획서를 내라고 해 산업계의 원성을 사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와 중국의 저가 공세 등에 맞서기 위해 단기·중장기 투자 계획을 뜯어고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기금의 근거가 되는 수요조사를 단 며칠 만에 끝내자 기업들의 현실적인 목소리를 담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주 관계 부처와 함께 첨단산업기금 신설을 위한 수요조사 공문을 만들어 업종 대표 기관에 발송했다.
수요조사 대상 업종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디스플레이, 로봇, 방산, 전기차, 자율차, 수소환원제철 등이다. 조사 내용은 △향후 5년간 투자 계획 △투자 자금 조달 계획 △개별 기업별 예상 프로젝트 개요 △건의 사항 등이다.
하지만 일부 업종에는 하루 반나절에서 이틀 만에 수요조사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해 현장에서는 혼선이 빚어졌다. 업종별 소속 기업들은 수천 개에서 수만 개에 달하는데 이들 기업의 연구·개발(R&D) 현황, 중장기 투자 계획, 애로 사항 등을 조사하려면 최소 2개월은 걸린다고 기업들은 토로한다. 첨단산업군 관계자는 "보고서 작성 시간을 빼면 사실상 하루 만에 모든 조사를 마쳐야 했다"며 "몇 안 되는 기업들의 의견만 서둘러 추려서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첨단산업군 관계자는 "기업들은 이미 핵심 사업 투자 자금을 마련했고 이 가운데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지원 사항을 세밀히 점검해야 했다"며 "기금의 실체가 불투명해 어느 범주까지 기업들의 요구 사항을 조사해야 하는지 고민이 컸다"고 밝혔다.
산업계 불만에 금융당국은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수요조사 시기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뿐 아니라 과거에 기업들에서 받아 놓은 첨단산업 중장기 계획을 더해 기금 정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수요 조사 방식도 문제였지만 첨단산업기금 지원 내용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과 일본은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세제 혜택을 주는데, 이번 지원 방식은 저리 대출에 국한되고 있어서다.
첨단산업계는 미래 부품 개발비, 스마트 공장 전환, 인프라 투자 등에 대한 지원을 원하고 있다. 현금 등 즉시 쓸 수 있는 자금이 절실하다는 기업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자국 산업 육성 기회를 놓쳐버리면 졸속 정책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며 "실질적인 지원 방안인 세제 혜택, R&D 지원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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