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으로부터의 소리 없는 소리 물질에 응결되는 정신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라는 바이다.”
1965년. 김병기(1916~2022)는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서문에서 이처럼 썼다. 당시 이응노, 김종영, 권옥연, 이세득, 정창섭, 김창열, 박서보.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 21점은 멀고 먼 상파울루로 보내졌다.
김병기는 한국관 서문에서 ‘현실’을 말했다. “우리들은 동양적 특질의 순결한 유지자로서의 의식과 긍지를 갖는다. 그러나 지난 1950년의 동난 이래 우리들이 부딪혀 온 것은 가장 예리한 톱니바퀴의 틈바구니의 현실이었던 것이며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코리아는 이미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아니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은 올해 첫 기획전으로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전환점이 된 행사였다. 당시 김병기는 커미셔너이자 심사위원으로서 한국 작가들의 출품을 주도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 무대 진출을 견인했다. 김환기의 특별실 전시 개최를 비롯해 전통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응노의 명예상 수상은 한국미술의 예술적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1960년대와 후반기의 작품 40여점을 소개한다. 이 중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은 이응노 구성(1960), 김환기 Echo 9(1965), Echo 3(1965), Echo 1(1965), 김창열 제사/Rite Y-9(1965) 등 총 5개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비엔날레 출품작들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시 준비하면서 상파울루 출품작을 열심히 찾아봤다. 아주 갸륵한 취지로 시작했지만, 60년대 유화작품이 남은 게 별로 없다. 당시는 외국 미술 재료 수입 금지조치가 있던 시절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경제 문제, 주거 환경, 작품 소장 문제 등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출처가 확실한 작품을 모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 정신만큼은 재조명해보자는 게 이번 전시 취지다.”
가나아트는 당시 작가들의 연령이 30대에서 50대의 ‘청년’ 시절이므로, 후반기 작품들도 함께 전시해, 청년기부터 완숙기까지 화풍과 주제가 변화하는 과정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은 “이번 전시가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되짚고, 당대 작가들이 펼쳐 보인 예술적 도전을 재조명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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