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규범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그 구성원들이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반행위에 제재를 하고, 규범의 내용을 실현하는 집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각 규범들은 그 성격에 따라 집행법을 두고 있다. 민사법은 민사집행법을 통해 그 권리와 의무를 실현한다. 형사법은 형집행법 등을 통해 징역형, 벌금형 등의 형벌을 집행한다. 만원을 빌리더라도 이를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그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받아 채무자 재산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낮은 수준의 범죄행위도 벌금형을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징역형과 유사한 노역장 유치를 한다. 한 대법관은 과거 단돈 800원 횡령을 이유로 버스 기사를 해고한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법규범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그대로 용인할 수 없다. 위법성이 확인되었음에도 이를 용인하는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그 법은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규범인 헌법은 다른 법들과 달리 이를 집행하는 법이 따로 없다. 헌법은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이 그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민은 최후의 수호자가 되어 헌법의 기본적 가치질서에 대한 침해행위를 예방하고 사후적으로 배제한다. 헌법은 그 수범자들의 자발적인 이행과 수호에 의해 비로소 온전히 그 규범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헌법적 가치질서는 파괴되고, 공동체는 무너진다.
헌법재판은 헌법규범의 내용과 헌법적 다툼에 관한 헌법의 인식과 실현작용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은 헌법이 규범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탄핵심판은 위헌적 직무수행을 제거함으로써 헌법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최근 일련의 탄핵심판들에서 행위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탄핵은 인용하지 않는 판단을 반복함으로써 위헌행위자들이 계속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도리어 위헌행위를 하였음이 선언되었음에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 직무대행자들은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이 선고되었음에도 계속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최고의 헌법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도리어 위헌 상태를 계속 만들고 있다. 항간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재판관 8명 중 5명의 인용, 3명의 각하나 기각 판단에 의해 기각될 것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위헌인 재판관 임명거부 행위가 탄핵 인용과 기각을 가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위헌행위가 헌법 기관의 구성을 결정 짓는 반헌법적 상태를 계속 만드는 것이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청구된 지 100일이 넘었고, 그 변론이 종결된 지도 30일이 넘었지만 여전히 선고가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재판관들이 사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늦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해져 극한에 이르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악용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했다. 그 직무대행자들은 이미 위헌이 선언되었음에도 재판관 임명을 계속 거부함으로써 위헌적 상태를 존속하게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지연하여 우리 사회가 더 극한대립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부담하는 국가기관들에 의해 도리어 헌법의 규범력이 훼손되고,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질서에 반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결국 꺼지겠지만 지금의 위헌적 상태가 초래한 우리 사회 갈등의 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 갈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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