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 배우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버스 타고 읍내에 나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지성인을 자처하는 여러분은 애인 팔짱 끼고 산으로 강으로 놀러 가지 않았습니까? 영어사전은 종이째 찢어먹으면서 기껏해야 여덟 쪽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선거공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투표하지 않는 계층은 결코 보호받지 못합니다. 투표하세요. 청년 실업자들의 분노와 설움을 표로 정치인에게 똑똑히 보여주십시오."
드라마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장일준(최수종 분)의 말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들이 정치권의 무능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하지만 장일준은 투표일 놀러 갈 생각만 말고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라고 일침을 가한다.
드라마가 종영된 지 10년도 더 됐지만 이 장면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선거철마다 회자되곤 한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이 출마한 18·19·20대 대선 때도 관심을 끌었다.
정치권이 50일 남짓 초단기 '6·3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 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은 대선 모드로 급전환하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은 이전 탄핵 때보다 빨라졌다. 민주당 비명계 대선주자 가운데 김두관 전 의원이 지난 7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대통령이 4일 금요일 파면됐으니 사실상 하루 만이다.
진보·보수 진영 대선주자들의 출마 러시는 다음 주까지 이어진다. 다만 익숙한 인물이 많아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들린다. 선거 일정에 따라 주요 정당들은 이르면 4월 말, 늦어도 5월 초 당내 경선을 마무리 짓고 각각 최종 대선후보를 선출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무당층·부동층 표심, 2030세대 투표, 대선 본선 구도 등이 당락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4월 1주 차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를 보면 ‘차기 대선 후보’를 묻는 질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34%)가 1위를 기록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9%),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5%), 홍준표 대구시장(4%), 오세훈 서울시장(2%)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의견 유보층으로 분류되는 부동층이 40%에 육박하고 있는 건 변수로 꼽힌다. 이들의 표심에 따라 선거판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본선 대진표가 범보수와 범진보 간 양자 구도로 잡히느냐, 3명 이상이 경쟁하는 다자 구도로 치러지느냐도 관전 포인트다.
전문가들은 양자 구도로 판이 짜이면 팽팽한 싸움이 펼쳐질 수 있다고 본다.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른 대선에선 보수 진영의 분열과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으며 당시 문재인 후보가 41.08% 득표율로 당선됐다. 홍준표(24.03%), 안철수(21.41%), 유승민 후보(6.76%)가 뒤따랐다.
4월 11일은 106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먼 타국에서 힘겹게 독립운동을 하던 순국선열들은 대선 소용돌이에 빠진 2025년 4월의 대한민국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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