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어려웠지만 지금처럼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룰'에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대기업 A 임원)
'협상은 없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적용 대상과 부과 방식, 시기 등을 놓고 3개월째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이 최고조로 치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 직후부터 알루미늄, 철강, 자동차, 의약품, 전자제품 등 다양한 품목에 걸쳐 무작위 관세 정책을 쏟아내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특히 한국 수출 품목 1위인 반도체 등 전자기기 관세 부과를 '유예'에서 하루 만에 '부과'로 번복하면서 관세 정책에 대한 경계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14일 외신·산업계 등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머지않은 미래에 시행될 것"이라며 "다음주 중 반도체 관세율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기업에는 유연성이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고 덧붙였다.
이는 전날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반도체·스마트폰·노트북·모니터 등 전자제품을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것을 뒤집은 결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 번복 후 본인의 SNS에서 "CBP의 결정이 관세 예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이들 제품은 기존 20% 펜타닐 관세를 적용 받기 때문에 다른 관세 범주(bucket)로 옮긴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우리는 국가 안보 관세 조사에서 반도체와 전자제품 공급망 전체를 들여다볼 것이며,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역시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자제품이 상호관세에서는 면제되지만 한두 달 안에 적용될 반도체 관세에는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전자업계는 하루 낮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과 중국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만큼 관세 리스크에 치명적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스마트폰의 약 5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어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공급망 조정이 필수적이다. LG전자도 중국에서 노트북, 모니터 등 PC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관세에 대비해야 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관세 유예로 다소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만에 재긴장 상태에 놓이게 됐다"면서 "생산지 유연성도 미국의 정책이 어느 정도 예측이 돼야 조정할 수 있는데 지금은 계획 자체를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미국 내 메모리 제조시설이 없다. 반도체와 D램 모듈,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같은 완제품, 그리고 이들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제조장비 등에 당초 예고한 25%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면 대기업은 물론 반도체 소부장 기업의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제조기업은 생산지별로 원가 경쟁력이 천지 차이이고, 공급망 조절에도 시간이 필요해 이 같은 정책 변동성은 치명적"이라며 "공급망 분산과 유연한 생산 체계 구축이라는 대비책을 세워놓고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반복돼 지켜보고만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제품 관세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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