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3년 반의 임기를 마친 공형식 전(前) 주일한국문화원장은 그동안의 문화원 운영을 돌아보며 "이제 일본에서 한류 콘텐츠는 정치적 기류에 좌우되지 않고 자생적으로 소비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류 드라마와 K-POP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일본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공 전 원장이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고 관찰한 결과다.
“과거에는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일본 방송사들이 한류 드라마 방영을 줄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일본 대중이 문화와 정치를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졌고, OTT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한류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비하는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단지 통계나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본인의 여권 소지율은 전체 인구의 약 17%로 6명 중 1명꼴에 불과하지만, 한국이 일본인의 최다 방문국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문화원이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들은 일본 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 전 원장은 “매년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어나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음식과 역사, 전통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문화원 행사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본인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일한국문화원은 1979년 세계 최초로 문을 연 해외 한국문화원이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현재 문화원 청사는 한국관광공사(관광), 한국콘텐츠진흥원(콘텐츠), 동경한국교육원(교육), 국외문화유산재단(문화유산), 한국농수산물식품공사(식품) 등 문화관련 유관기관들이 함께 입주한 '코리아센터'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문화·관광·교육·식품 등 한국 문화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공 전 원장은 일본 사회 특성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신뢰와 배려를 핵심 가치로 여기고, 표현에 있어 조심스럽고 간접적인 방식을 선호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 사회가 겉으로는 집단주의적인 듯하지만, 사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며 “적절한 거리두기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지나친 친절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렇게 신중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를 쌓으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일본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2024년 주일한국문화원이 한글날을 기념해 개최한 '한글 캘리그래피 공모전' 응모작들. [사진=주일한국문화원 제공]](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5/16/20250516120029128444.jpg)
이러한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기획된 행사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것은 ‘한일교류 작문 콘테스트’와 ‘한국어 말하기 대회’다. ‘한일교류 작문 콘테스트’는 일본 전통의 하이쿠(俳句)와 센류(川柳) 부문을 포함해,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상호 문화 교류로 발전시켰다.
또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일본 전역의 7개 지역에서 예선을 개최하며 현지 고교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긍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공 전 원장은 “도쿄와 오사카에 한국문화원이 있지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 학생들에게는 참가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지역 예선을 통과한 학생들이 도쿄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출전해 지역을 대표하게 되면, 본인은 물론 학교와 지역사회 전체가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며 “이는 곧 한국어 학습에 강력한 동기부여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는 394명의 고교생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작문 콘테스트 역시 2024년에만 4,007명이 응모했으며, 특히 일본 전통 서도(書道)의 영향으로 친숙한 붓글씨를 활용한 캘리그래피 공모전도 높은 호응을 얻었다. 그는 “일본 사회가 성취 지향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참가자들이 경쟁 자체보다는 대회 참여의 즐거움과 작품이 평가받고 전시되는 데서 오는 뿌듯함을 더 크게 느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문화원은 한방 위크, 전통 매듭 강좌, 한국과 역사적 인연이 있는 장소를 직접 답사하는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로 일본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중·고교생 대상 한국어 강좌나 어린이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 등 연령별 맞춤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공공외교의 기반도 꾸준히 다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요리 콘테스트와 같이 한국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콘텐츠 제공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일본의 지방 도시들을 찾아가 한국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공 전 원장은 “문화원은 일본 속 작은 한국”이라며 “온라인을 통한 콘텐츠 소비도 중요하지만, 직접 체험을 통해 얻는 감동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방 도시로 직접 찾아가는 ‘찾아가는 문화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 지자체와 협력해 매년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더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공 전 원장이 가진 공공외교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우리 문화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즐기는 것이 진정한 공공외교"라고 강조했다. 매년 개최되는 '한일축제한마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양국의 공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교류의 장을 만든다.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다. 문화원은 이를 기념해 다양한 기획 전시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6월 산토리홀에서 열리는 한일 양국 음악인 협연 콘서트와, 9월에 열릴 한일축제한마당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공 전 원장은 “문화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래서 공공외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라며 “문화원이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 한국을 처음 만나는 창구이자,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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