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중국의 '자원 무기화'를 기술 제재로 맞받으면서 관세 전쟁 휴전에 돌입한 양국간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항공기·반도체 등 관련 기술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고, 중국은 유럽연합(EU)에 대한 희토류 수출 통제 완화를 시사하며 반도체 협력을 제안하는 등 EU 포섭에 나섰다. 관세 전쟁 휴전이 무색하게 양국이 공급망을 겨냥한 무역 전면전을 개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항공기 엔진, 반도체, 특정 화학물질 등과 관련된 핵심 기술의 대(對)중국 수출을 금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미 상무부가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코맥)에 일부 핵심 부품과 기술을 공급하는 자국 기업들에 대한 수출 라이선스 발급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코멕은 중국 최초의 중형 여객기 C919를 개발한 국영기업으로, 지난 2023년 C919의 상업 비행을 개시하며 보잉과 에어버스가 장악하고 있는 세계 항공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엔진을 비롯해 항공기 제어에 필요한 핵심 부품은 아직 미국·유럽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상무부가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시놉시스·지멘스 EDA 등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업체들에 중국에 대한 기술 공급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서한을 발송했다고 다른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EDA는 반도체를 개발할 때 ‘시뮬레이션·디자인·검증’하는 기술로 이 소프트웨어 기술 없이는 정교한 반도체를 만들 수 없어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미국산 EDA는 중국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 반도체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을 금지한 것은 광물 자원 무기화에 나선 중국에 맞불 제재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이 전 세계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핵심 광물 희토류는 반도체·자동차·항공우주 등 첨단 기술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중국이 수출 통제를 지속할 경우 미국 산업 공급망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과 중국은 이달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서로에 대한 관세를 115%포인트씩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했지만,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는 합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4일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에 대한 보복 조치로 마사륨·가돌리늄·테르븀 등 중(中)·중(重)희토류 7종과 희토류 자석 등에 대한 수출 통제 시행에 나선 바 있다.
미국이 제재의 고삐를 죄어오고 있지만 중국도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광물 자원을 내세워 유럽연합(EU) 등과 반도체 협력 강화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7일 베이징에서 중국-EU상공회의소, 중국과 유럽 반도체 공급망 기업 40여곳 등과 좌담회를 열고 협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와 관련 중국 상무부의 공식 보도자료에 희토류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한 소식통은 중국일보에 상무부가 유럽 업체들에 자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정책을 설명하고, 수출 허가 신청 절차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카드를 쥐고 EU 포섭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아담 더넷 주중 EU 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번 회의에 참석한 데 대해 유럽 기업들이 (희토류) 수출 지연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희토류 확보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앞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주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의 카스파르 펠트캄프 네덜란드 외무장관과 만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이에 대해 "무역 및 기술 문제에 있어 미국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중국의 자신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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