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일 잘했다' 수식어 붙는 정부를 기대한다.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새 정부가 출발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정권 교체기에 여러 중요한 사회, 경제 지표가 바닥을 쳤고 전(前) 정부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니 새로 시작하는 정부로서는 유리한 출발선에 선 셈이다.
 
새 정부의 첫걸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사가 만사인데 장차관급 자리에 실력 있는 사람들을 쓰고 있다는 중론이다. 통상교섭의 야전 사령탑으로 귀환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고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서 통상교섭본부장 자리에 제격이라는 의견들이다. 대통령의 소통 리더십이라든지 새로운 일의 방식도 호평을 받고 있다. 배는 기대를 안고 항구를 떠났고 먼 항해를 마치고 다시 항구에 돌아올 때 좋은 점수를 받을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새 정부가 잘되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결과를 떠나 몇 가지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 큰 담론, 매크로 지표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달성할 수 있는 것부터 착실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 고용 등 거시지표는 내세울 때는 좋지만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국제 여건도 받쳐 줘야 하고 비즈니스 사이클이 맞아야 한다. 거시 목표 자체가 전망에 가깝고 장밋빛 청사진 같아서 중간 이정표가 없고 방법론 제시도 쉽지 않다. 그러니 운이 좋으면 결과가 좋았다가 재수 없으면 나빠서 책임을 져야 한다. 경제성장이 좋다고 치적으로 삼거나 나쁘면 무능한 정부라고 비난하지만 노력을 평가하고 책임 지우는 것은 쉽지 않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수출이 어찌 산업통상자원부 한 부처의 몫이겠는가. 거의 운구일기(運九一技, 운이 아홉, 노력은 하나) 정도 수준이다. 수출 잘 되는 해에 무역 담당 간부를 하면 승진이고 운 나쁘면 인사이동 대상이다. 경제성장이나 고용 등 추상적인 거대한 목표보다는 핵심 킬러기술에서 경쟁국과의 격차 몇 년 유지, 또는 세계 시장 점유율 몇 %를 내세우는 것이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동기부여 정책이 되지 않을까.
 
둘째 정책 목표를 제시할 때는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정책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대의 화두는 AI이고, 우리 정부도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경쟁국에 뒤지지 않도록 AI 기술 발전에 박차를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처럼 AI 디바이드(AI divide)가 생겨나 AI를 활용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AI는 인공지능이니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본질이다. AI가 확산되면 미래 문명은 가속화되겠지만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AI 확산에 따른 사람들의 소외와 일자리 상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여야 한다. AI 분야 일자리를 늘린다고 하겠지만 AI 일자리를 차지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생산성이 떨어진 공공 섹터에서 사람을 대거 뽑아 해결할 수는 없다.
 
셋째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가져온 플라자 합의를 이끈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 베이커 장관과 레이건 대통령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참모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베이커가 말하고 레이건이 웃으면서 받아 적고 있다. 우리 국무회의는 어떤가. 대통령 혼자 시간을 독점하고 장관들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느라 열심이다. “군기 잡기” “호통” 이런 말까지 나온다. 21세기도 4분의 1이나 지났는데 20세기 이전에 생긴 고질적인 상하 위계질서 문화가 곳곳에 퍼져 있다. 기업 총수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계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이 명찰을 차고 공손하게 말씀을 경청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지성을 이루는 것이 회의인데 토론은커녕 대통령의 지시 일변도로 끝나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 각 부처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 보고 보도를 보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공약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보고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고 한다. 국정기획위원회 사람들이 굉장한 전문가이겠지만 공약 내용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지 않으면 반영해서 잘 이행할 것을 당부하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실에서 하나하나 챙기기보다는 각 부처에 위임하고 재량을 많이 부여함으로써 여럿이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넷째 무엇을 하려면 법 만들고 조직 만들고, 현판식부터 시작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만난 성공한 한인 벤처기업 회장은 “미국에서 벤처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육성법이나 육성조직이 아니라 바로 도전정신을 북돋워 주고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문화”라고 지적했다. 바로 그러한 문화에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태어났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AI 시대의 제왕이 된 젠슨 황의 엔비디아가 탄생하게 된 것 아닐까.
 
다섯째 국제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중화학 산업은 핵심기술을 자체 개발해서 살아남도록 푸시할 필요가 있다. 중화학 대기업들은 막대한 초기 투자와 생산 여력을 확보하면서 국내 시장을 균점하고 남는 생산량을 해외에 수출하였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해야 되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고 원료 수입국의 자체 생산화로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치열한 자구노력을 기울여 살아남아야지 정부가 지원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정부는 기업보다 교육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오랜 기간 등록금 동결과 국제화 드라이브의 결과, 한국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유학생 유치에 나섰고 그 결과 특정국의 유학생이 급증하게 되었다. 그동안 부족한 대학의 재정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수업의 질 저하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대학교육은 많이 힘들어져 교육 자체의 발전도, 사회발전에도, 인재 양성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 학생들은 국내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보다 해외 유학을 떠나고 있고 그 빈자리를 외국 유학생들이 메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 학생이 아니면 어떻고 국내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 대신 해외 유학이 늘면 어떠냐고 반문한다면 국내 교육의 미래에 눈을 감고 백년의 국가계획이라는 교육의 중요성을 경시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대를 받고 출발하는 이재명 정부. 포장보다는 내실을, 지원 중심의 큰 정부보다는 민간이 스스로 활발하게 '경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제도를 다듬는 합리적인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전(前) 정부와 비교한 반사효과나 바닥을 친 기저효과를 누리는 정부가 아니라 “아 정말 일 잘 했다”는 평가를 듣는 그런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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