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새로운 정부가 일주일 후면 출범한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과연 3년 전 이맘때쯤에 출발한 윤석열 정부 때와 달라질 것이 있을까. 그 당시에 투고하였던 졸고 칼럼을 찾아보았다. 그때 칼럼의 요지는 정부의 실패는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되기 때문에, 새 정부의 성공이 필요하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권교체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안정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부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필요하다고 제언하였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당장은 지지자들이 환호할지 모르지만 그동안 투자한 것이 사장되는 등 작지 않은 좌초자산(stranded assets)과 매몰비용(sunk cost)이 발생한다. 다음으로 신뢰 상실의 비용이 발생한다. 진영에 따라 편이 나뉘어 정부 정책을 불신하면서 갑론을박 편싸움에 일해야 할 귀한 시간을 허송세월하기 쉽다. 새 정책에는 자원 투입은 물론 상당한 회임기간이 필요한데 논쟁이 길어지면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혼란이 커질 우려가 있다. 하나의 예로서, 재생에너지와 원전 간 비중 조정 등 매몰비용이 큰 에너지 정책 전환은 국제적인 추세와 국내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둘째,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당시 정권교체의 과정에서 지지층과 반대층이 박빙으로 대립하였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사람들은 전(前) 정권에 대한 불만을 새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했고, 상대 진영은 이에 저항함으로써 차기 정권 탈환을 위한 세력의 결집으로 삼을 조짐이 있었다. 찬성과 반대가 계속 부딪치면 나라는 어지러워진다. 반대를 무릅쓰고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지지자에 기대어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잘못을 딛고 얻은 정권이 어느덧 지난 정권의 닮은꼴이 되고 만다. 이러한 문제의 무한반복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권 출범의 초기에 반대 진영도 참여하는 “국가 발전 대회의”를 개최하여 중장기적인 국가 발전의 마스터플랜과 공유 가치를 확립하고 대통합의 정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셋째, 나라의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일부 부처의 블랙 리스트 사건을 예로 들면서 이는 담당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즉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기를 2~3년으로 정하지 말고 정권교체와 더불어 임원들을 교체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하든지 아니면 정치와 무관한 유능한 전문가를 공모해서 제대로 뽑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곳곳에 생산성이 매우 낮은 공적 분야가 적지 않지만, 신분보장과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구조조정과 혁신 노력을 기울이기 어렵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하는 개혁을 통해 미래 성장 분야에 인원을 집중하는 대대적인 혁신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들이 3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필요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책임도 있다. 정권이 제대로 출범하기도 전에 실패를 예단하고 몰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와 그들을 나눌 수도 없거니와 “그들만”을 편을 갈라 나무라서도 안 된다. 정권이 실패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도 우습게 알고 미국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존감이 우리 발전의 추진력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자존감이 현실에서도 먹히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사적 굴욕을 부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을 가능하면 폄하하고 경시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우리가 기억하던 수십 년 아니 수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모든 면에서 우리를 뛰어넘고 있고 악몽이 조만간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분야는 모르지만, 국제경쟁력은 중국보다 앞서야 하고 첨단산업은 중국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이고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을까. 노력은 중국보다 안 하면서 중국보다 앞서길 바라고 소관 부처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질책한다.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것이 정치이지만 국가경쟁력까지 함께 높게 유지되려면 온 나라의 특별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도처에 좋은 글, 좋은 말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되어야 나라가 발전한다. 중요한 국가적 아젠다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거대 담론이지만 복지와 국가경쟁력 간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룰 필요가 있다. 합의가 안 되면 또 끝없는 싸움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OECD의 평균 수준에서 출발하되 우리나라의 사정을 감안해서 ±α(알파)의 최선안을 도출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일 트럼프 발 통상문제가 핫 이슈이다. 트럼프의 장막이 걷히면 무엇이 남을까. 결국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문제가 되고 수출과 무역수지가 성적표로 나타난다. 수출이 늘 증가하고 무역수지가 언제나 흑자이고 물가가 안정되면 좋겠지만 개방 경제에서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과 고용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 고용, 물가, 수출, 무역수지 등에 대한 상대적 기준선을 정하고 부족하면 노력하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실패하려고 하는 정부는 없다. 정권 초기에 모든 분야에서 A+를 받으려고 세운 과도한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국민도 정부에 대한 관용의 마진(margin of tolerance)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든 나라를 제치고 최우등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의 강점 산업조차도 중국을 이기는 것이 날이 갈수록 벅찬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국내 진영싸움에 골몰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을, 각국과의 국제경쟁력 싸움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중국 뒷자리는커녕 멀찌감치 처진 열등생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에 탄생하는 정부의 임기 말에 이 글을 다시 곱씹지 않아도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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