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에 진입했다. 아직 구체적 제도나 발행 기준도 없지만 기업들은 일단 이름부터 선점하고 보자는 식이다. 시장에서는 자칫 투기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최소한의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사전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4일 특허청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국내 기업들이 출원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은 400여 건에 달한다. 초기에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 계열사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전문은행·빅테크·카드사뿐 아니라 대형 게임사, 패션·유통기업 등으로 출원 주체가 넓어지고 있다. 금융업 외 산업군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의 선제적 시장 진입을 노리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이들 출원 중 실질적 서비스 개시 일정이나 백서, 발행 계획 등을 제시한 사례는 전무하다. 실질적인 사업화보다 상표권 확보·선점 의도에 가까운 출원이어서 실체 있는 사업 계획 없이 '무늬만 발행 준비'인 셈이다. 대부분 기업에서 가상자산 사업 추진 자체는 검토하고 있지만 조직 개편이나 인프라 구축과 같은 구체적 움직임은 거의 없다.
특히 상표권을 확보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스테이블코인이 투기성 자산으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술력이나 인허가 준비가 없는데도 '코인 테마주'로 묶이며 주가가 요동치는 것은 시장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훼손하고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요인이 된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인프라가 부재한 상황에서 거래소를 통한 역외 스테이블코인 유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1분기에만 해외 이체 가상자산 중 절반에 가까운 47.3%(약 30조원)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유출이다. 누적 유출액은 5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당국의 과도한 규제나 법 시행 이전에 '질서 있는 진입' 기준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정 요건을 갖췄다면 시장 진입 자체를 금지하기보다 공식 경로 안에서 관리하자는 제안이다.
최태환 우리은행 디지털자산팀장은 "아직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나 제도가 없다 보니 관련 산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원화 주권 차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은 분명한 만큼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사업화 전 단계에서 투명성과 실체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하원이 이번 주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포함한 가상자산 관련 법안 3건을 논의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12만 달러를 돌파했다. 시장은 해당 법안들이 통과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가상자산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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