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사양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공력평가의 진가(眞價) 드러난다. 고속 주행에서 공기의 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겨내는지가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결정짓는 중요 포인트기 때문이다. 공기저항계수를 0.01Cd 낮추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6.4km 늘어나며,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25만4000원의 가치가 있다."(박상현 현대차 공력개발팀 팀장)
지난 23일 방문한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는 전기차 개발의 '요람(搖籃)' 그 자체였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 약 347만㎡ 달하는 거대한 부지에 마련된 연구동은 신차 및 신기술 개발,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 등 차량 개발과 관련된 첨단 장비가 총망라된 현대차의 심장이다. 남양연구소에서 일하는 약 7만명의 직원들은 신차의 성능을 1%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테스트 차량을 수 천 번씩 담금질 한다. 이런 노력으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723만대의 차량을 판매해 3년 연속 글로벌 판매 톱 3위에 올랐고, 올 5월에는 전용 전기차 누적 판매량 100만대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공기저항 0에 도전한다...글로벌 넘버원 '에어로 챌린지 카' 공개
이날 연구소 투어는 삼엄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취재진의 전자기기는 보안 스티커가 부착돼 연구소를 떠날 때까지 사용할 수 없었고, 모든 녹음, 촬영 등도 금지됐다. 약 4시간 동안 자동차 풍동 시험을 진행하는 '공력시험동', 다양한 기후 조건으로 차량의 열관리 성능을 연구하는 '환경시험동', 차량의 핸들링 및 승차감 성능을 개발하는 'R&H성능개발동', 소음과 진동을 해석하고 차량의 감성 품질을 구현하는 'NVH동'을 직접 둘러볼 수 있었다.
총 면적 약 6000㎡ 규모의 축구장 크기인 이 실험실에서는 대형 송풍기, 지면 재현 장치 등 실제 주행 환경을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설비들이 집약돼 있었다. 실제 눈 앞에서 본 직경 8.4m의 대형 송풍기는 그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다. 건물을 붕괴시킬 정도의 강한 풍속이지만 송풍기의 날개는 탄소섬유 복합 소재로 제작돼 100km/h 속도로 바람을 생성할 때도 소음이 약 54dB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 사무실 정도의 정숙함이다. 시험실 바닥에는 총 다섯 개의 회전 벨트가 설치된 턴테이블이 자리해 다양한 지면 재현 평가가 가능했다. 차량의 네 바퀴 아래와 차량 하부 바퀴 사이 바닥면에 벨트를 함께 회전시켜 바퀴의 구동뿐 아니라 지면과 차량 하부 사이에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이날 현대차는 세계 최저 공기 저항 계수 0.144를 달성한 '에어로 챌린지 카'를 공개했다. 이 차는 현대차∙기아 공력개발팀이△액티브 카울 커버 △액티브 사이드 블레이드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 △액티브 리어 디퓨져 △통합형 3D 언더커버 등 다양한 공력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콘셉트카다. 특히 액티브 사이드 블레이드와 리어 디퓨져는 자동차 뒷면의 길이를 약 40cm 연장해 측면 와류와 후류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직원이 차 주변에 연기를 분사하자 액티브 기술이 작동되면서 차량 주변 공기의 흐름 변화와 공력 성능 개선 효과를 시각적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의재 공력개발팀 책임연구원은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공개한 초저항력 콘셉트카의 Cd값이 0.19~0.17 수준임을 감안하면 에어로 챌린지 카의 기술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직 선행 기술 개발 단계인 만큼 지속적인 성능향상과 검증 과정 등을 통해 양산차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동 폭염, 북유럽 눈보라도 문제 없다...극한의 환경에서 담금질 하는 전기차
전기차는 영상 50도에 달하는 사막 기후와 영하 30도의 설원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배터리 성능과 안정적인 주행성능을 유지해야 한다. 환경시험동은 이런 극단적인 기후 조건에서 전기차의 열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곳이다. 엔진과 변속기의 냉각 성능, 냉난방 공조 성능, 실내 쾌적성 등 차량 내 주요 열 관련 시스템이 대상이다.
환경시험동에 들어서자 전 세계 다양한 기후와 주행 조건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는 환경 풍동 챔버가 눈에 들어왔다. 이 공간에서는 고온·저온·강설 풍동 상황에서 차량의 다양한 사용 조건을 시험한다. 환경시험동 관계자는 "50℃ 고온의 중동 지역은 물론 영하30℃ 혹한 지역의 강설 환경 등 세계 각지의 극단적인 기후를 그대로 구현해 전기차 냉·난방 공조 시스템과 배터리 열관리 성능을 검증한다"면서 "이를 통해 얻은 구체적 데이터는 단순한 열효율 향상을 넘어, 주행 안정성과 실내 쾌적성, 전비 효율 등 차량 성능을 최적화하는 데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방문한 고온 환경 풍동 챔버에서는 마침 고성능 모델인 '아이오닉 6 N'의 차량 평가가 한창이었다. 아이오닉 6 N은 섀시 다이나모미터 위에 단단히 고정돼 시속 50km로 설정된 속도에 따라 바퀴를 연신 굴리고 있었다. 차량 위에는 솔라(Solar)라고 하는 인공 태양광 제어 램프가 달려 최대 1200W/㎡의 일사량으로 태양광 노출 환경을 모사했다. 주행 중인 차량 안에는 인체 모형에 다수의 온도 센서를 부착한 서멀 마네킹이 탑승하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기온 50℃, 주행풍 속도 시속 50km' 알림이 떳고, 머리 34℃, 가슴 32℃, 팔 45℃, 다리 63℃ 등 서멀 마네킹의 온도가 신체 부위별로 표시돼 있었다.
송대현 열에너지차량시험1팀 책임연구원은 "서멀 마네킹은 실제 사람을 대신해 차량 내부의 열적 쾌적성을 측정하는 장비"라며 "에어컨 송풍구 위치나 공조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따라 체감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실내 쾌적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반대편 저온 환경 풍동 챔버로 이동하자 최근 출시한 기아 PV5가 영하 20℃ 환경에서 시험중이었다. 차량 표면에는 성애가 내려앉아 있었고, 차가운 주행풍을 맞으며 다이나모 위를 주행 중인 PV5는 마치 혹한의 북유럽 겨울 도로 위를 달리는 듯했다. 실험실 관계자는 "극저온 환경에서 실내 난방 성능, 모터나 배터리의 저온 제어 성능 등을 시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눈과 비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강설·강우 환경 풍동 챔버에 직접 들어가봤다. 내부 온도는 영하 30℃로 현대차 아이오닉 9이 시험대에 올라 있었다.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강설 챔버로 입장하자 차량 앞에서 거친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고, 곧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려와 입이 덜덜 떨리며 치아가 탁탁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연구실 관계자는 "겨울철에는 전기차 주행거리와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실제 극한의 저온 환경을 설정해 충전구나 트렁크에 눈이 들어가진 않는지, 눈이 녹으면서 배터리 전장 계통의 문제가 발생하진 않는지 등을 평가하는 시험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고효율 히트펌프를 비롯해 최소 전력으로 최대 난방 효과를 내는 기술도 개발해 곧 양산차에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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