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싱크로율은 높게, 온도는 다르게…영화 '좀비딸'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 좀비딸 스틸컷 사진NEW
영화 '좀비딸' 스틸컷 [사진=NEW]

좀비물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붕괴된 도시, 몰려드는 좀비, 필사적으로 생존을 외치는 인간들까지 수없이 반복된 장면이 이제는 하나의 공식처럼 느껴진다.

영화 '좀비딸'(감독 필감성)도 그 연상선일 거라 여겼다. 익숙한 공포와 액션으로 채워진, 또 하나의 좀비 영화일 거라는 막연한 짐작이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마주한 '좀비딸'은 좀비물의 공식을 깨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좀비'를 제거해야 할 위협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그려내며 장르가 품을 수 있는 온도를 새롭게 정의한다.

이 작은 시선의 전환은 익숙한 장르에 낯선 숨결을 불어넣는다. 피와 폭력으로만 소비되던 좀비물이 '가족'과 '관계'라는 테두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익숙함을 깨고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는 이 영화는, 오래된 장르에 다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뜻밖의 이유가 된다.

맹수 전문 사육사인 정환(조정석 )은 사춘기 딸 수아(최유리 분)와 티격태격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고 수아가 감염된다. 사회는 감염자를 색출하려 들지만, 정환은 딸을 지키기 위해 은봉리로 향한다. 수아가 어렴풋이 말을 알아듣고, 좋아하던 춤에 반응하는 걸 보면서 그는 결심한다. 사육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좀비가 된 딸을 '사람들 사이에서 살 수 있게' 길러내기로.
영화 좀비딸 스틸컷 사진NEW
영화 '좀비딸' 스틸컷 [사진=NEW]

영화 '인질'과 시리즈 '운수 오진 날'까지 스릴러 장르에서 활약한 필감성 감독은 '좀비딸'을 통해 코미디와 드라마를 아우르며 새로운 장르의 확장성을 내비쳤다. 필 감독은 '좀비를 길들인다'는 발상을 코미디와 드라마를 재난물의 리듬 속에 얹었다. 피와 공포가 아닌 부성애와 휴머니즘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결과, 영화는 다소 엉뚱하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톤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호흡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다. 조정석은 생활 연기와 애틋한 부성을 오가며 '정환'을 완성한다. 이정은은 '밤순'으로 등장해 은봉리 마을의 공기를 따뜻하게 채우고, 조여정은 좀비 헌터 '연화'로 러블리한 매력과 강단 있는 액션을 동시에 소화한다. 최유리는 300일간 특수분장을 견디며 '수아'를 사랑스럽고도 섬뜩한 존재로 완성, 영화가 가진 묘한 톤을 정확히 구현한다. 영화의 킥은 반려묘 '애용' 역을 맡은 금동이. 오디션을 통해 이 역할을 꿰찬 금동은 원작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영화의 마스코트로 활약했다. 

다만 원작의 싱크로율이 높아도, 영상화 과정에서 오는 이질감은 조금씩 묻어난다. 웹툰이 가진 시니컬하고 담백한 유머가 스크린에서는 조금 뜨겁게 번역됐다. 필감성 감독의 선택과 집중은 드라마적인 요소에 방점을 찍었고, 그 온도 차가 원작 팬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영화의 B급 감성이나 특유의 유머코드가 맞지 않는다면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에너지가 밀어붙이는 힘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30일 극장 개봉.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