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미로운 치아백서] 치과의사도 발치를 싫어합니다

  • 치료 시작은 '보존'...예방과 정기검진 중요

유슬미 DDSDoctor of Dental Surgery 사진 유슬미 DDS
유슬미 D.D.S(Doctor of Dental Surgery) [사진= 유슬미 D.D.S]

치과 진료에서 환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결정 중 하나가 발치입니다. 진료 초기에 치아를 뽑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당황하거나, 반대로 경미한 문제에도 쉽게 발치를 권유받을 때 불안을 느끼는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료의 대원칙은 명확합니다. 자연치아는 가능하다면 끝까지 보존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자연치아는 단순히 음식을 씹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치근막이 제공하는 미세한 저작 감각, 치아 주변 뼈인 치조골의 유지, 인접 치아와의 공간적 균형 등은 어떤 보철물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치조골은 치아가 존재해야 유지되며, 치아가 빠지면 뼈 흡수가 급격하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치아의 보존은 기능적 측면뿐 아니라 구강 전체 건강을 위해서도 가장 우선시돼야 합니다.

그런데도, 특정 상황에서는 발치가 불가피합니다. 대표적으로 치주 조직과 치조골이 심각하게 손상돼 치아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특히 40대 이상에서는 치아 자체보다 잇몸과 뼈의 손상이 주된 발치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조골이 50% 이상 흡수됐거나, 치아동요도가 3도 정도가 되면 장기 예후가 좋지 않아 발치를 권합니다. 또한 외상이나 교합력으로 인해 치아 뿌리까지 파절이 진행된 경우, 심한 충치로 인해 남은 치질이 거의 없고 수복 재료의 부착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도 발치가 필요합니다.

만성 치근단 농양이 반복돼 치아 주변의 뼈가 이미 많이 녹아 내린 상태거나, 치근흡수가 진행돼 재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발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치과의사는 환자의 나이, 전신 상태, 생활 습관, 과거 치료 이력, 그리고 향후 재치료 가능성까지 포함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단기적인 불편 해소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구강 건강을 위한 치료 계획을 세웁니다.

임상에서는 치료 적기를 놓친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는 발치를 권할 수밖에 없는데, 환자는 '뽑지만 않게 해달라'며 호소하면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제때 정기검진을 받고 조기에 대응했다면, 충분히 치아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경우들이라 안타까움을 더 합니다. 

자연치아는 한 번 상실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발치는 치료의 시작이 아닌, 정말 마지막 선택이어야 합니다. 하루 두 번의 정확한 칫솔질과 이 사이 관리, 그리고 정기적인 치과 검진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치아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 전략입니다.

치과의사로서 가장 바라는 것은 환자가 치아를 잃기 전에 그 가치를 깨닫고, 예방에 힘쓰는 것입니다. 치아를 살리는 치료는 가장 아플 때가 아니라, 가장 이른 때 시작돼야 합니다.

◆유슬미 D.D.S.(Doctor of Dental Surgery)
서울대학교 치의학 전문대학원 석사
보건복지부 통합치의학 전문의
현 치과의사 겸 의료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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