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찾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오픈런을 위해 줄을 선 관객들로 북적였다. [사진=윤주혜 기자]
#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황프엉리씨(32)는 최근 베트남을 방문했다가 어린 조카들의 한국 사랑에 깜짝 놀랐다. “11살 조카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몬)에 푹 빠졌어요. 조카가 한국에 꼭 오고 싶다고 해서, 코엑스 케이팝(K-팝) 스퀘어, 남산타워 등 케데헌 성지를 함께 둘러볼까 생각 중이에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한국을 향한 전 세계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케데헌 열풍은 스크린 밖으로 번져, 외국인들이 박물관과 골목 식당까지 찾게 만드는 새로운 여행 흐름을 만들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한 일본인 청소년(18)은 케데헌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유물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국 박물관에는 젊은 관람객이 많네요. K-컬처 굿즈 덕분에 젊은층이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찾나봐요. 일본서는 대중문화와 전통문화가 연결된 박물관 굿즈를 보긴 힘들거든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왼쪽)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이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물을 주고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케데헌발(發) 훈풍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감지됐다. 이 작품을 만든 매기 강 감독은 최근 박물관을 직접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실제 박물관의 문화상품인 '뮷즈' 중 ‘호랑이·까치 배지’는 케데헌 캐릭터 '더피'와 닮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켰다. 애니메이션 속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갓' 등 전통 모티프가 화제를 모으면서, 한류는 K-팝과 K-푸드를 넘어 K-전통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케데헌은 한국 미술과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을 되살렸다.
미술 전문 유튜버 '어 브러시 위드 베카'(A Brush with Bekah)는 케데헌의 모티프가 된 박생광, 오윤 등 한국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일월오봉도 등 우리의 다양한 전통을 조명했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11만회에 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원광대 금속주얼리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선종현씨(24)는 ‘한국적인 것’을 말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상품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대중적인 상품보다는 공예품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뮷즈는 한국 전통을 트렌디하게 담았어요.”
케데헌 성지순례 지역 소개글 [사진=비짓서울넷 누리집]
케데헌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지난 6월 20일 공개 이후 구글에서 ‘한국’ 검색량은 이전 대비 두 배 가까이 뛰며 2년 8개월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행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에서도 콘서트 셔틀 예약 거래액이 133% 폭등했고, 대중목욕탕 콘텐츠 방문율(84%)·한복 체험 예약(30%)·한식 콘텐츠 소비가 모두 늘었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들은 영화 속 무대를 따라 콘서트장, 목욕탕, 분식집, 국밥집을 찾는 등 ‘케데헌 성지순례’에 나서고 있다.
관광 업계는 케데헌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한국관광 통합 플랫폼을 통해 케데헌과 연계한 외국인 대상 한국 관광지 소개와 소비자 참여형 이벤트를 진행했다. 서울관광재단은 갓 열쇠고리(키링) 만들기 등 특별 체험 프로그램과 한복 체험 포토존을 운영 중이다. 또 케데헌의 배경이 된 서울 명소 여덟 곳을 방문하고, 음식을 체험하는 미션도 진행할 계획이다.
관광 업계에서는 케데헌 열풍이 콘텐츠의 파급력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놀유니버스 관계자는 "정부와 민간 기업의 콘텐츠 관광상품화, 굿즈 개발 등 전략적 협업이 필요하다"면서 "팬덤을 활용한 마케팅, 해외 인플루언서 등을 통한 글로벌 협력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