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공포로 쌓은 신군부 비자금, 법으로 대물림 막아야

  • 강성필 필립커뮤니케이션 소장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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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필 필립커뮤니케이션 소장 [사진=아주경제DB]
'범죄'로 담기 어려운 참혹한 행위가 있다. 심지어 매우 긴 시간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한 특전사 소령은 사령관이 불법체포 당하는 것을 막으려다 총에 맞았다. 동네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아이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았고, 뒷산에서 놀다 총소리에 도망치던 아이는 새 신발을 주으려다 또 총에 맞아 죽었다. 의료진은 밀려드는 총상 환자에 거즈가 부족해 삶아서 재사용했으며 부족한 혈액을 기다리며 절규하던 환자들은 숨을 멈췄다.

이러한 사실을 다룬 기사 1만1000여 건이 사라졌고, 1만6000여 건은 부분 삭제됐다. 이것은 신군부의 비상계엄 456일 동안 벌어진 '국가폭력범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전두환의 군홧발로 정권을 잡은 이들은 6월 민주항쟁 이후 노태우가 '보통사람'의 양복을 입고 다시 정권을 잡아 10년 넘게 요직을 장악했다. 이들과 측근들은 아직도 원로라는 호칭과 막대한 자금력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신군부는 국가권력을 범죄에 동원했다. 지속적이고 압도적인 폭력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야당 총수였던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일해재단의 기부금 요구에 미온적이던 국제그룹은 강제로 해체됐다. 언론은 통폐합되고 700명 넘는 기자들이 해직됐다. 

45년이 지난 최근 국사편찬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기밀 해제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 1980년 당시 미국 정부 문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는 한국 군인들의 무절제한 야만성에서 비롯된 대량 학살과 암살을 비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역사적 진실은 더디지만 밝혀진다. 신군부에 맞섰던 김오랑 중령(사후 추서)의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45년 만에 승소했다. 이렇게 역사적 정의 역시 더디지만 바로 잡혀간다. 

그러나 역사가 항상 앞으로는 가지 않는다. 전두환·노태우를 위시로 그 측근들이 공포와 비리로 쌓은 막대한 비자금이 후손들에게 대물림 중이다. 전두환의 867억원 추징금 미납에 자택이라도 환수하려던 국가는 본인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패소했다. 전두환 손자가 자택 내 비밀금고와 비자금을 폭로했지만 전씨 일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태우는 어떤가. 본인 입으로 5000억원에 가까운 비자금을 축적했다고 했지만 실제 추징금은 2628억원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다 냈다는 이유로 사후 국가장을 치르는 영광까지 얻게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태원 SK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친의 비자금 300억원을 제시해 이를 근거로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까지 받게 됐다. 이 밖에도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지금도 노태우 일가의 차명보험, 차명회사, 차명부동산 의혹은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은 범죄수익을 합법화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그들의 뜻이 그렇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법원에 쥐어진 법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국회가 범죄자의 사망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지 못해도 국가폭력범죄에서 파생된 불법자금을 환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 통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새 정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범죄라는 표현으로 담기엔 너무 참담한 일을 우리 국민들이 지난해 12월 막지 않았다면 이런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죽어도, 해외로 도망가도 범죄수익은 반드시 환수돼야 역사는 앞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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