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th BIFF] 박찬욱 감독 '어쩔수가없다', 30주년 무게 새긴 개막작(종합)

'어쩔수가없다' [사진=연합뉴스]

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막을 올렸다. 세월의 무게를 품은 영화제는 첫 공식 경쟁 부문을 도입해 아시아 영화의 중심 무대로 나아가고,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그 서막을 열었다. 베니스와 토론토에서 먼저 뜨거운 환호를 받은 작품은, 드디어 고향 무대에서 관객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맞이하며 30주년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새겼다.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중국장에서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 CJ ENM 스튜디오스 배급 CJ ENM)의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평온한 삶을 살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면서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다.

박찬욱 감독 [사진=연합뉴스]

이날 박 감독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라는 건 다들 아실 것이다. 드디어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며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온 것은 처음이고, 거기에 3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해라 더욱 떨린다"고 말했다. 

이어 "원작을 읽자마자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고민은 필요 없었다. 원작의 힘, 코미디적 가능성, 그리고 만수의 비밀이 드러날 때 벌어질 상황들이 새로운 층위를 열어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종이를 만드는 일이 주인공에게는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영화도 단순한 오락거리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을 건 일이 될 수 있다"며 "한국 영화계가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이 작품이 조금이라도 회복의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어쩔수가없다' 배우 이병헌 [사진=연합뉴스]

주연 배우들의 감회도 남달랐다. 만수 역의 이병헌은 "촬영을 마치고 이렇게까지 기다려온 작품은 드물다. 제 작품 중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고 떨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맡은 만수는 특별히 개성 강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다. 하지만 극단적 상황에 몰리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게 제 숙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니스와 토론토를 다녀오며 영화계 위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종이의 쓰임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극장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AI 역시 배우와 감독 모두에게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느꼈다"고 현실적인 고민을 전했다.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손예진은 아내 미리 역을 맡았다. 그는 "영화계 상황이 좋지 않아 배우로서 영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더욱 의미 있었다"며 "관객들에게 엄마처럼, 아내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운 생활인의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비극적인 순간이 많지만 낙천적으로 현실을 돌파하는 지혜로운 인물이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제 영화를 일반 관객과 처음 보는 자리가 영광스럽다.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감회를 덧붙였다.

배우 손예진 [사진=연합뉴스]

박희순은 박찬욱 감독과의 첫 협업 소감을 전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촬영 중간에 사진을 찍고, 인터뷰 답을 쓰고, 아름다운 사물을 보며 감탄하던 감독님 모습이 낯설었다. 이렇게 딴짓을 많이 하는 감독님은 처음이었다"며 "그럼에도 테이크가 들어가면 완전히 돌변해, 매 순간 다른 디렉션을 주셨다. 한 테이크 한 테이크마다 새로운 걸 요구하고,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연기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저 역시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감독님 영화 중에서도 이번 작품이 가장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제 작품 중에서도 제일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솔직한 바람을 전했고, 염혜란은 "세 번을 봤는데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있다. 숨겨진 의도와 미장센이 많아 더 알고 싶어진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들은 이 작품이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 할 이유를 관객에게 직접 전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다. 내년 명절 TV 특집으로 보는 게 아니라, 따뜻한 필름으로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고 강조했고, 손예진은 "한 번은 감독님의 미장센에 압도될 것이고, 두 번째는 제 연기가, 세 번째는 전체 배우들의 호흡이 보일 것"이라며 관람을 권했다. 박희순은 "첫 번째 관람에선 웃음이 터졌는데, 두 번째 관람에선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웃고 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고,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선정되는 등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이병헌은 토론토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며 작품의 의미를 더했다.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이며, 영화제가 맞은 30주년의 무게와 함께 관객 앞에 섰다.

한편 이번 영화제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아시아 주요 작품 14편이 경쟁하는 공식 경쟁 부문이 신설됐다. 개막작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64개국 241편의 공식 초청작을 비롯해 커뮤니티비프, 동네방네비프까지 총 360편이 상영되며 대상 수상작은 오는 26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