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의대에 미친 한국 …과학 기술 '인재 전쟁' 승리하려면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하여 주요 선진국과 기업들은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정책과 예산, 법률 및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BS가 지난 7월 「인재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공대에 미친 중국’과 ‘의대에 미친 한국’을 대비하여 조명하자, 많은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제작팀은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보완하여 11월에 책으로 출간하여 인재 양성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가고 있다.
인재 전쟁을 치르는 대한민국은 인재 양성과 인재 확보 전투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재 양성 측면에서 국내 대학의 국제 경쟁력 부족으로 미래 인재 확보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세계 3대 대학평가인 QS(Quacquarelli Symonds) 순위, THE(Times Higher Education) 순위, ARWU(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는 평가 중점과 특징은 다르지만, 우리 국력에 비해 상위권에 진입한 국내 대학이 적다. 첫째, QS는 영국의 평가 기관으로서 1994년부터 매년 평가 순위를 발표하는데, 9개의 평가지표를 사용하는 종합적 평가이며 내년부터는 ‘외국인 학생의 국적 다양성’ 지표를 추가하므로 영어권 대학이 더 유리해진다는 평이 있다. QS2026 세계 대학 순위에서 100대 대학에 포함된 국내 대학은 3개교가 있는데 서울대 38위, 연세대 50위, 고려대가 61위를 차지했다. 둘째, THE는 영국의 고등교육 평가 기관으로서 2004년부터 매년 교육 여건, 연구 성과, 산학협력, 국제화, 사회 영향력 등 5개 분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발표한다. THE2026 평가 순위에서 100위 이내에 진입한 국내 대학은 4개교로서, 서울대 58위, KAIST 70위, 연세대 86위, 성균관대가 87위에 위치했다. 셋째, ARWU는 2003년부터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 고등교육연구소가 학술 수준 중심으로 평가하여 발표하는데, 2025년 순위에서 100위 이내에 진입한 국내 대학은 81위를 차지한 서울대가 유일하다. 위의 세 평가 결과를 보면, 영어권 대학의 우세와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은 사회적 평판보다 학문 분야별 성과와 연구 경쟁력(논문 피인용지수)이 더 중요하다. 지난 6월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이 출범 5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적인 대학평가기관인 THE와 과학출판사 엘스비어(Elsvier)에 의뢰한 연구 경쟁력 평가 결과 보고서가 나왔다. 비교 대상 6개 대학(UC버클리, 케임브리지대, 싱가포르국립대, 칭화대, 도쿄대, 서울대) 중 서울대 자연대가 학문 분야별 논문 피인용지수 점수는 가장 낮았고, 기초과학 분야 상위 25% 수준 논문의 피인용지수, 즉 추산 연구 역량은 글로벌 중간값에도 미치지 못했다. THE가 지적한 서울대 자연대의 문제점은 교수 간 연구 역량 격차가 심각하고, 국제 협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초 학문을 하는 자연대학 교수진의 연구 역량이 저조한 데다, 중국과 달리 AI 등 첨단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공과대학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인재 확보 측면에서는 국내에서 양성된 인재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걱정하는 지경이니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국내외 이공계 인력 2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BOK 이슈노트, 2025.11.3.)에 의하면, 이공계 인력의 해외 진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특히 국내 이공계 주요 5개 대학 출신 인력이 순유출의 47.5%를 차지한다. 국내 근무 인력의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특히 20~30대에서는 그 비중이 70%에 달했다. 또한 AI 분야에서는 OECD 38개 국가 중 네 번째로 인재 순유출이 많다.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로, 연봉 수준 등 금전적 요인이 가장 크고, 연구생태계, 경력 기회 보장 등 비금전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하여 세계적 연구 업적을 가진 국내 연구자를 5년간 100명 선발하여 지원하고, AI와 반도체 등 핵심 전략기술 분야에서 5년간 해외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석학들에게 부여하는 예우인 ‘원사(院士)’ 제도와 해외 연구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천인계획(千人計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중국이 높은 연봉과 각종 인센티브로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뿐만 아니라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연구진을 유인하는데, 이들을 지키려면 중국 이상으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과학기술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확보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인재들이 안정된 수입과 직장만 추구하기보다 과학기술자와 엔지니어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과학기술인 우대정책을 강도 높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이번에 실시하는 ‘국가과학자’ 제도는 중국의 ‘원사’ 제도보다 더욱 실효적이어야 하고, 이공계 인재들이 정년 제한 없이 장기간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기업 및 대학이 집중하는 분야의 연구개발(R&D) 예산을 증대하여 과학기술 인재를 기르는 생태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 정치권 선거로 정권이나 지자체의 장이 바뀌거나 대학에서 총장이 바뀌어도 진행 중인 연구가 완결되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APEC 2025에 내한한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으로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공급이라는 선물을 받고도 대한민국의 산업현장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확보한 GPU를 구동할 AI 인재를 확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AI 등 과학기술 인재 시장에서는 인재 확보 전쟁이 치열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초·중·고에서 최상위권 인재의 상당수가 이공계 대학 대신 의대 쏠림에 휩싸이지 않고, 이공계를 선택한 인재들이 더 나은 연봉과 연구 환경을 찾아 해외로 떠나지 않도록 이공계 우대 분위기와 정책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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