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KB금융·신한·우리의 공통된 우려…포용금융,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금융은 늘 두 개의 언어로 말한다. 하나는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이다. 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며 경제를 확장하는 힘이 바로 금융이다. 동시에 그 확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 가능성을 계산하고 관리하는 것 역시 금융의 본질이다. 이 두 언어가 균형을 이룰 때 금융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한쪽이 과도해지는 순간, 금융은 오히려 위기의 출발점이 된다.
 

최근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이 해외 투자자들에게 보낸 신호는 이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KB금융,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는 공통적으로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확대가 향후 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금융 확대는 부실로 이어질 수 있고, 취약계층 지원은 연체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이런 내용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알렸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다. 내부 우려가 외부 메시지로 전환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이상한 장면이다. 금융은 원래 기업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왜 그 역할 자체를 위험이라고 말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금융은 ‘돈을 빌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곧 손실 가능성을 떠안는다는 뜻이고, 그 위험에 맞는 대가를 받는 구조가 유지될 때만 금융은 지속된다. 이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금융은 정책의 도구로 변하고, 결국 스스로의 기반을 약화시키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포용금융의 본질은 시장 논리로는 돈을 빌리기 어려운 계층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위험을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면 이들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거나 아예 금융에서 배제된다. 따라서 포용금융은 필연적으로 시장 가격을 일부 수정하는 정책이다.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위험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는 금융의 원칙과,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정책의 목표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원칙의 포기가 아니라 시스템 재설계다. 핵심은 간단하다.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부담을 나누는 것이다.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외부에서 보전하고, 금융기관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위험을 관리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금리 일부를 보조하거나 보증기관이 손실 일부를 떠안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금융은 시장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결국 포용금융의 문제는 ‘가격을 낮출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그 차이를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많은 논의가 멈춘다. 보통은 “손실을 분산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따라온다. 그 손실은 결국 누구의 몫인가. 정부가 보증하고 재정을 투입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온다. 금융기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 문제라면, 그 부담을 사회 전체로 옮기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다만 답 역시 단순하지 않다. 금융위기의 역사를 보면, 사전에 투입된 비용보다 사후에 치른 비용이 훨씬 크다. 미국의 금융위기, 유럽의 재정위기 모두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초기에는 위험을 방치했고, 문제가 터진 뒤에는 훨씬 큰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지금 통제 가능한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통제 불가능한 비용을 치를 것인가.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가 여부’가 아니라 ‘전가의 조건’이다. 모든 위험을 세금으로 떠안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안정과 직결되는 영역에서는 일정 부분 공동 부담이 불가피하다. 이때 필요한 것은 명확한 기준이다. 지원 대상은 어디까지인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성과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기준 없는 분산은 단순한 책임 회피일 뿐이다.


해외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흔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린다. 저소득층의 주택 소유를 확대한다는 정책적 목표 아래 대출이 늘어났고, 그 대출은 복잡한 금융상품으로 포장돼 전 세계로 퍼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책적 대출 확대와 금융기관의 과도한 위험 추구가 결합되면서 시스템 전체가 붕괴됐다. 정책만의 실패도 아니고, 시장만의 실패도 아니었다. 두 요소가 동시에 작동했을 때 위기가 발생했다.


유럽 역시 비슷한 교훈을 남겼다. 남유럽 국가들은 경기 부양과 사회 안정을 위해 신용 공급을 확대했지만, 생산성과 연결되지 않은 금융은 결국 부실로 돌아왔다. 그 결과는 국가 재정 위기와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졌다. 금융은 정책의 보조 수단일 수는 있지만, 정책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연체율은 상승하고 있지만 통제 가능한 범위에 있고, 금융 시스템 역시 안정적이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정책 금융의 속도가 금융의 체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다.


첫째, 정책과 금융의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그 비용을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책 비용은 정책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 재정, 보증, 세제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부담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금융기관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책에 협조하되, 위험 관리 기준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 성과를 위해 기준을 낮추는 순간, 그 비용은 장기적으로 더 크게 돌아온다. 금융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신뢰이며, 이는 건전성에서 나온다.

셋째,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지주들이 해외 투자자들에게 리스크를 공개한 것은 단순한 공시가 아니다. 현재 구조에 대한 경고다. 내부에서 감지된 위험은 결국 외부로 드러난다. 이를 숨기기보다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속도를 관리해야 한다. 금융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빠르게 확대하는 것은 쉽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 정책의 효과를 점검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금융은 선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좋은 의도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의는 쉽게 부실로 변한다. 포용금융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 가능하려면, 속도와 비용, 그리고 책임의 구조가 명확해야 한다.


지금 금융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방향은 맞지만, 설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경고를 정책과 시장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길을 다시 걷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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