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한·미 민감한 현안 산적…지금 필요한 건 고위급 전략 조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임박하면서 동북아 정세와 글로벌 공급망의 긴장감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미·중 양국은 관세와 희토류, 반도체와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충돌 관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급변하는 질서 속에서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외교 전략을 재정비하는 동안 한국은 정작 한·미 간 핵심 현안 조율에서 뚜렷한 주도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 한·미 사이에는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민감한 의제들이 한꺼번에 쌓여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물론이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한미군 역할 조정, 대중국 공급망 재편,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협력, 대북 정책 공조까지 안보와 경제 현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비용 문제를 반복적으로 거론해온 만큼 향후 미국의 압박 강도 역시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미국 내에서는 동맹국의 방위 책임 확대 요구가 더욱 노골화되는 분위기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 속에서 한국 역시 예외가 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단순히 국방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위비와 주한미군 문제는 통상과 산업, 기술 협력 문제와도 연결돼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과 배터리 투자, 첨단기술 협력 과정에서도 동맹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한국 입장에서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미국 시장은 한국 기업들의 핵심 수출 무대이고, 중국은 여전히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이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명확한 전략 없이 개별 현안에만 대응할 경우 외교적 부담과 산업 불확실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정치 일정과 정쟁 속에서 대미 전략 논의가 단편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미 간 인식 차이를 냉정하게 확인하고, 국익 중심으로 조율할 수 있는 고위급 전략 대화다. 정상 간 신뢰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외교·안보·산업 라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이견을 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전작권 전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는 단순한 군 지휘권 이양 문제가 아니라 한·미 연합방위 체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주한미군 역할 변화와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방위비 협상 역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 구조와 전략적 역할 재조정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 여기에 반도체와 인공지능, 배터리 산업까지 안보 자산으로 간주되는 시대가 되면서 산업 정책과 외교 전략의 경계도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정부의 외교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과 공조를 유지하되 한국 산업과 안보 이익을 동시에 지켜낼 수 있는 세밀한 협상이 필요하다. 동맹은 중요하지만 국익보다 앞설 수는 없다. 반대로 국익을 이유로 전략적 소통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결국 핵심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고위급 조율 능력이다.
 
지금 국제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중 갈등은 장기화하고 있고 동맹 체계 역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한국은 외교적 공백이나 전략 부재를 드러내선 안 된다. 한·미 간 민감한 현안이 쌓여갈수록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가 아니라 냉정하고 치밀한 고위급 협의다. 국익은 구호가 아니라 협상과 조율의 결과로 지켜지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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