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일일까. 아니면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일까.
사람은 사랑을 통해 가장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가장 외로워지기도 한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의 시선 하나, 말 한마디, 침묵마저도 의미를 갖는다. 그 순간 사랑은 기쁨보다 불안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혹시 나만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이 관계는 나 혼자만의 믿음은 아닌지 말이다.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을 떠나 이국의 도시를 떠도는 작가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하루를 술과 약물로 흘려보낸다. 특별한 목적도, 분명한 미래도 없는 그는 바(BAR)와 거리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지만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는 사람들 속에 있지만 언제나 혼자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직 군인 유진 앨러턴(드류 스타키)을 만나게 되고 윌리엄은 유진에게서 강렬한 이끌림을 느낀다. 유진은 말이 많고 감정을 쉽게 내보이는 윌리엄과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가까워질 듯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한 걸음 물러난다. 그의 침묵은 무심함인지, 조심스러움인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유진의 그런 모호함이 월리엄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는다. 유진은 윌리엄을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함께 있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윌리엄은 유진과 함께라면 또 다른 삶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이 과정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사랑이 커지는 만큼 유진에 대한 의존과 불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윌리엄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를 유진을 통해 찾으려 하지만 윌리엄의 눈길을 끌었던 그의 젊음과 모호함은 어느덧 윌리엄을 불안 속으로 더욱 끌어 내린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는 없다
영화 속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로 다른 관계를 살아가는 듯 보인다. 유진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윌리엄은 남미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신비로운 식물 ‘야헤’(Yagé)를 찾아 떠난다. 인간의 의식을 연결해 텔레파시를 가능하게 해 준다는 이 식물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영화 속 ‘야헤’는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상징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꿈꾸는 윌리엄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 모든 마음의 거리를 없애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랑은 거리를 지우는 감정이 아니라 그 거리를 견디게 만드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사랑해서 행복했던 얼굴보다 사랑해서 더 외로워진 윌리엄의 잔상이 떠다닌다.
영화 속에서 사랑보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외로움이다. 가장 깊은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지만 끝내 닿을 수 없을 때 찾아온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외로운 감정, 사랑함에도 느껴지는 불안함,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관계. 이는 성별과 성 정체성을 떠나 모든 이들이 겪는 인간 본연의 것이다. ‘퀴어’는 남을 이해하는 일이 완성이 아닌 과정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첫사랑과는 다른 욕망의 색깔
‘퀴어’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첫사랑의 아픔을 청량하게 비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으로 유명하다.
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같은 첫사랑의 색감으로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피부에 스치는 햇빛 하나, 수영장의 물결, 여름 공기의 모습을 그리는 청량한 색감으로 풋풋한 사랑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반면 ‘퀴어’는 술과 끈적한 바, 습한 공기, 몽환적인 환각 등이 화면을 채운다. 상대를 향한 욕망과 더불어 스스로 공허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은 지네가 꿈틀대며 움직이는 모습과 ‘야헤’를 들이킨 뒤 심장을 토해내는 등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두 영화의 또 다른 큰 차이점은 ‘성장’과 ‘고독’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랑의 낭만에서 존재론적인 의미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주인공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첫사랑을 잃지만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반면 ‘퀴어’는 로맨스를 넘어 삶의 한 켠을 존재론적 의미로 들여다본다. 전작을 통해 사랑이 삶을 확장시키는 힘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사랑이 끝내 메울 수 없는 인간의 결핍이라는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인생에 햇빛이 맑은 날만 있지 않듯이 사랑도 같다. 사랑의 기쁨으로 희열을 느끼는 날들 뒤엔 그만큼의 어둠이 있다. 해가 높게 뜰수록 그림자도 짙어지게 마련이다.
외로움, 불안, 고독. 사랑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사랑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일은 스스로 상처를 용인하는 일과 같다. 그렇다해도 우리는 존재하기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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